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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 한눈 · 별권
불교 역사
인도 북부(마가다)에서 오늘까지
검수용 교정본 · 배포 금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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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제1장 기원전 6세기의 불교
- 제2장 기원전 5세기의 불교
- 제3장 기원전 4세기의 불교
- 제4장 기원전 3세기의 불교
- 제5장 기원전 2세기의 불교
- 제6장 기원전 1세기의 불교
- 제7장 1세기의 불교
- 제8장 2세기의 불교
- 제9장 3세기의 불교
- 제10장 4세기의 불교
- 제11장 5세기의 불교
- 제12장 6세기의 불교
- 제13장 7세기의 불교
- 제14장 8세기의 불교
- 제15장 9세기의 불교
- 제16장 10세기의 불교
- 제17장 11세기의 불교
- 제18장 12세기의 불교
- 제19장 13세기의 불교
- 제20장 14세기의 불교
- 제21장 15세기의 불교
- 제22장 16세기의 불교
- 제23장 17세기의 불교
- 제24장 18세기의 불교
- 제25장 19세기의 불교
- 제26장 20세기의 불교
- 제27장 21세기의 불교
이 책이 다루는 것
- 기원과 형성
- 확산
- 내부 분화
- 정치·사회와의 관계
- 현대적 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기원전 6세기의 불교
기원전 600년~기원전 501년
고통의 뿌리를 묻는 길이 열리다
인도 북부 마가다 지역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브라만교의 제사와 카스트 질서 바깥에서, 스스로의 수행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출가자 공동체(승가)가 만들어지고 재가 신자가 이를 후원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 네 가지 진리(사성제)와 여덟 갈래 길(팔정도)이 가르침의 뼈대가 되었다.
- 생몰연도는 전통적 연대(기원전 563~483년경)와 수정 연대(기원전 480~400년경)가 맞선다.
- 같은 시기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도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활동했다.
- 초기 가르침은 문자가 아니라 암송으로 전해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신바빌로니아가 근동을 지배하다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에 무너졌다. 그리스에서는 폴리스가 성장했고, 중국은 춘추시대 후기로 공자가 활동했으며, 인도에서는 갠지스 유역에 여러 나라가 다투고 있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이 시기에 서로 만나지 않았다. 다만 기원전 6세기는 근동과 인도 양쪽에서 기존 종교 질서를 다시 묻는 움직임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에서 함께 놓고 볼 만하다.
이 시대의 사건
고타마 싯다르타의 깨달음과 첫 설법 (기원전 528년)
브라만교의 제사와 카스트 질서 바깥에서 수행으로 해탈을 찾는 사문(沙門)들이 활동하던 시대였다.
- 출가 공동체(승가)가 만들어졌다
제2장 기원전 5세기의 불교
기원전 500년~기원전 401년
가르침을 기억하는 공동체
붓다의 입멸 후 승가는 가르침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았다. 문자가 아니라 함께 외우는 방식으로 경(가르침)과 율(규율)이 정리되었다고 전한다. 마가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후원을 받으며 승원이 자리 잡았다.
- 1차 결집은 불교 전통의 서술이며, 그 역사성은 학계에서 논의된다.
- 출가 공동체와 재가 신자의 관계가 제도로 자리 잡았다.
- 가르침은 여러 지방어로 암송되어 전해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페르시아 제국이 근동을 지배했고,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뒤 아테네가 전성기를 맞았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소모되었다. 인도에서는 마가다가 강국으로 떠올랐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여전히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기에 양쪽 모두 ‘스승이 떠난 뒤 가르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 유대교는 글로 적힌 토라를 읽고 해석하는 길을, 불교는 함께 외워 확인하는 길을 택했다.
이 시대의 사건
제1차 결집 (기원전 483년)
붓다의 입멸 후 가르침과 규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가 승가의 과제가 되었다.
- 구전으로 전해질 가르침의 틀이 정해졌다고 전한다
제3장 기원전 4세기의 불교
기원전 400년~기원전 301년
승가가 갈라지기 시작하다
계율의 세부 해석을 두고 승가 안에서 견해가 갈리며 상좌부와 대중부 계열의 분화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등장은 다음 세기 불교 확산의 정치적 조건이 되었다.
- 2차 결집 기사는 전통의 서술이며, 분열 시점은 학계에서 논의된다.
- 부파불교로 이어지는 갈래가 이 무렵부터 나타난다.
같은 시대의 세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 서북부까지 진출했다. 그의 사후 제국은 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 등으로 갈라져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일어났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지중해와 인도가 하나의 교역·문화 통로로 이어졌다. 두 종교의 직접 만남을 보여 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이후 세기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 길이 이때 열렸다.
이 시대의 사건
제2차 결집과 승가의 분화 (기원전 383년)
붓다 입멸 후 백 년쯤 지나 계율의 세부 해석을 두고 견해가 갈렸다고 전한다.
- 상좌부 계열과 대중부 계열의 갈래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성립 (기원전 322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인도 서북부의 정치 질서가 흔들린 뒤였다.
- 인도 아대륙 대부분이 하나의 통치 아래 놓였다
제4장 기원전 3세기의 불교
기원전 300년~기원전 201년
왕이 전법을 후원하다
아쇼카는 정복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뒤 다르마에 따른 통치를 내세웠고, 그 내용을 바위와 돌기둥에 새겨 남겼다. 이 칙령들은 인도사에서 손꼽히는 1차 사료다. 그의 후원 아래 불교는 인도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아쇼카 칙령은 실물로 남아 있는 1차 사료다.
- 칙령은 특정 종파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 집단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 스리랑카 전래는 이후 상좌부 전통의 중심축이 된다.
같은 시대의 세계
헬레니즘 왕국들이 지중해 동부를 나눠 다스렸고, 서쪽에서는 로마가 카르타고와 겨루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최대 판도를 이뤘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선교와 전파
이 세기에 두 전통은 각각 자기 땅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유대교는 경전을 그리스어로 옮겼고, 불교는 왕의 후원으로 전법사를 보냈다. 번역과 파견 — 종교가 국경을 넘는 두 가지 방식이 같은 세기에 나타났다.
이 시대의 사건
칼링가 전쟁과 아쇼카의 전환 (기원전 261년)
마우리아 제국이 아직 복속시키지 못한 칼링가를 정복하려 했다.
- 아쇼카가 무력 정복을 그만두고 다르마에 따른 통치를 선언했다
스리랑카 전래 (기원전 247년)
아쇼카가 여러 지역에 전법사를 보냈다고 전한다.
- 섬 전체에 불교가 자리 잡았다
제5장 기원전 2세기의 불교
기원전 200년~기원전 101년
그리스 왕과 승려가 마주 앉다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북부에서 불교는 그리스계 통치자·주민과 접촉했다. 《밀린다왕문경》은 그 만남을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이 지역의 문화 접촉은 훗날 불상 조각 양식에도 영향을 준다.
- 간다라 지역이 불교와 헬레니즘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 부파불교의 여러 학파가 각자의 논서를 발전시켰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로마는 지중해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무너진 뒤 여러 왕조가 섰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인도-그리스 왕국이 있었다. 중국 한나라가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종교는 여전히 직접 만나지 않았다. 다만 이 세기에 지중해–중앙아시아–인도를 잇는 교역로가 활발해지면서, 종교가 상인과 함께 이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제6장 기원전 1세기의 불교
기원전 100년~기원전 1년
경전이 글자가 되다
스리랑카에서 구전으로 이어지던 가르침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인도 서북부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대승 사상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동쪽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문자화는 가르침의 보존 방식을 바꾼 큰 전환이다.
- 대승 계열 경전의 형성은 기원 전후로 이어진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공화정이 내전을 거쳐 제정으로 바뀌었다. 지중해 전체가 한 정치 질서 아래 묶였고, 도로와 항로가 정비되었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계속 퍼졌고, 스리랑카에서는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로마와 인도를 잇는 해상·육상 교역로가 이 무렵 활발해졌다. 두 종교의 직접 접촉을 보여 주는 자료는 없지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은 다음 세기들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이 시대의 사건
팔리 삼장의 문자화 (기원전 29년)
기근과 전란으로 구전 전승이 끊길 위험이 있었다고 연대기는 전한다.
- 팔리 삼장이 문자로 고정되었다고 전한다
제7장 1세기의 불교
1년~100년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쿠샨 왕조의 후원 아래 간다라·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번성했고, 상인과 승려를 따라 중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불상을 만드는 관습이 이 무렵 자리 잡았고, 대승 경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중국 전래 시점은 전승(67년 백마사)과 학계 추정이 다르다.
- 간다라·마투라에서 불상 조각 양식이 발전했다.
- 대승 계열 경전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하나의 정치·교통 질서로 묶었다. 이 ‘로마의 평화’ 아래 도로와 항로, 공용어인 그리스어가 사람과 사상을 빠르게 실어 날랐다. 동쪽 끝에서는 후한과 쿠샨 왕조가 실크로드를 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종교는 이 시기에 만나지 않았다. 다만 로마와 한나라를 잇는 교역로가 이어져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제8장 2세기의 불교
101년~200년
한문으로 옮겨지기 시작한 경전
중앙아시아 출신 승려들이 중국에 와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번역은 낯선 개념을 중국의 말로 바꾸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도가 용어를 빌려 쓰기도 했다.
- 안세고·지루가참 등이 초기 한역 작업을 이끌었다.
- 간다라 불상 양식이 정착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인도에서는 쿠샨 왕조가 번성했고, 중국 후한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직접 접촉의 증거는 없다. 다만 두 종교 모두 이 세기에 ‘번역’이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는 점은 비교해 볼 만하다.
이 시대의 사건
불경 한역의 시작 (148년)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 출신 승려들이 중국에 들어왔다.
- 중국어로 읽을 수 있는 불교 문헌이 생겼다
제9장 3세기의 불교
201년~300년
중국 땅에 뿌리내리기
분열기 중국에서 불교는 외래 종교로서 자리를 찾아갔다. 도가 사상의 용어를 빌려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격의)이 쓰였고, 왕실과 귀족의 후원이 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혼란기에 로마는 군인 황제들의 교체, 국경 침입, 경제난을 겪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사산 왕조가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쿠샨이 쇠퇴했다.
제10장 4세기의 불교
301년~400년
중국 불교의 성장기
북중국의 여러 왕조가 불교를 후원하며 사찰과 석굴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남중국에서는 지식인 사회와 결합한 불교가 발전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과 대박해를 지나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 수도가 되었고, 395년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가 일어났다.
제11장 5세기의 불교
401년~500년
구마라집의 번역
구마라집의 유려한 한역으로 대승 경전이 중국 지식인에게 널리 읽혔다. 이 번역들은 이후 동아시아 불교의 표준 본문이 된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이동 속에서 해체되고 여러 왕국이 세워졌다.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인도 굽타 왕조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사건
구마라집의 한역 사업 (401년~413년)
쿠차 출신 승려 구마라집이 전란 중에 중국으로 옮겨 왔다.
- 《묘법연화경》 《금강경》 등 널리 읽히는 한역본이 나왔다
제12장 6세기의 불교
501년~600년
동아시아 전역으로
중국에서 천태 등 독자적 교학이 자라났고,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불교가 전해졌다. 동아시아 불교권이 이 세기에 완성된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옛 로마 영토의 일부를 되찾고 법전을 정비했다. 서유럽은 게르만 왕국들의 시대였고, 중국은 589년 수나라로 다시 통일되었다.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졌다.
이 시대의 사건
일본 불교 전래 (538년)
한반도의 백제가 야마토 왕권과 교류하며 불상과 경전을 보냈다.
-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들어왔다
제13장 7세기의 불교
601년~700년
현장의 여행과 티베트 전래
현장은 17년에 걸쳐 인도를 다녀와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고, 그 여행 기록은 인도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티베트에는 이 세기에 불교가 전해져 이후 독자적 전통으로 발전한다.
- 《대당서역기》는 7세기 중앙아시아·인도를 알려 주는 1차 사료다.
-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 이 세기다.
- 당의 국제적 개방성 속에서 여러 종교가 장안에 공존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을 때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일어났다. 사산조는 무너졌고 동로마는 시리아·이집트를 잃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열었다.
이 시대의 사건
현장의 구법 여행 (629년~645년)
한역 경전의 번역이 서로 달라 원전을 직접 확인할 필요가 커졌다.
- 대량의 산스크리트 경전을 가져와 번역 사업을 벌였다
제14장 8세기의 불교
701년~800년
국가 불교와 티베트의 선택
일본에서는 국가가 대사찰을 세우는 국가 불교가 전성기를 맞았고, 티베트는 인도계 불교를 받아들이는 방향을 택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세웠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왕조가 일어나 800년 대관식으로 이어졌다. 당은 안사의 난으로 흔들렸고, 일본은 나라 시대를 맞았다.
제15장 9세기의 불교
801년~900년
폐불의 충격
845년 당의 폐불로 중국 불교는 큰 타격을 입었고, 이후 선종처럼 사찰 경제에 덜 의존하는 흐름이 상대적으로 힘을 얻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카롤루스 제국이 분열하며 서유럽의 윤곽이 잡혔다. 바이킹의 이동이 유럽을 흔들었고,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으로 약해졌지만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당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불교 ↔ 기독교 — 박해와 차별
845년 당의 폐불은 불교만이 아니라 경교·마니교 등 외래 종교 전반을 겨냥했다.
이 시대의 사건
회창폐불 (845년)
사찰이 소유한 토지와 인력이 국가 재정과 병력에 부담이 된다는 인식이 커졌다.
- 중국 불교가 큰 타격을 입었다
- 중국의 경교 공동체가 사실상 무너졌다
제16장 10세기의 불교
901년~1000년
인쇄된 경전
송에서 대장경을 목판으로 인쇄하면서 경전 보급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동아시아 불교 문헌의 표준이 마련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지고 봉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 세계는 아바스·파티마·후우마이야로 나뉘었다. 중국에서는 송이 통일을 이루고 인쇄술이 발전했다.
이 시대의 사건
대장경 목판 인쇄 (971년~983년)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방대한 경전을 대량으로 찍을 수 있게 되었다.
- 경전을 대량으로 보급할 수 있게 되었다
제17장 11세기의 불교
1001년~1100년
티베트의 후전기
아티샤의 티베트 방문으로 불교가 다시 정비되었고, 여러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도 본토에서는 정치 상황이 나빠지며 불교 교단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을 장악하고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동로마를 크게 이겼다. 서유럽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서임권을 두고 다투었고, 노르만인이 잉글랜드와 남이탈리아를 차지했다. 중국은 송, 인도 북부는 가즈니 왕조의 침입을 겪었다.
제18장 12세기의 불교
1101년~1200년
인도에서 사라지다
정치적 혼란과 대사원 파괴로 인도 본토의 불교 교단이 사실상 끊겼다. 다만 티베트·동남아시아·동아시아에서는 계속 발전했다. 인도 불교의 쇠퇴를 한 사건으로만 설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십자군 국가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았다가 살라딘에게 밀렸다. 서유럽에서는 도시와 대학이 성장했고,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 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무사 정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불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북인도의 정치 변동 속에서 불교 대사원이 파괴되었다. 다만 인도 불교의 쇠퇴는 이전부터 진행된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이 시대의 사건
인도 불교 대사원의 파괴 (1193년)
북인도의 정치 질서가 무너지고 새 세력이 갠지스 유역으로 들어왔다.
- 인도 본토 불교 교단의 학문 중심이 무너졌다
제19장 13세기의 불교
1201년~1300년
일본 불교의 대전환
민중이 실천할 수 있는 형태의 신앙(염불·좌선·제목)을 내세운 새 종파들이 나타나 일본 불교의 성격을 바꿨다.
같은 시대의 세계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렀고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서유럽에서는 대학과 탁발수도회가 성장했다. 인도에는 델리 술탄국이,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가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이슬람교 ↔ 불교 — 정치적 협력
몽골 제국 아래에서 여러 종교가 한 정치 질서 안에 놓였다. 지배층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불교·이슬람·기독교를 각각 후원하기도 했다.
이 시대의 사건
일본 가마쿠라 신불교의 등장 (1224년)
전란과 기근으로 말세 의식이 퍼졌고, 기존 대사찰은 귀족 중심이었다.
- 정토종·정토진종·선종·일련종 등이 자리 잡았다
제20장 14세기의 불교
1301년~1400년
티베트에서 계율과 학문을 강조하는 개혁 흐름이 일어나 겔룩파로 이어진다.
같은 시대의 세계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유럽을 흔들었다.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했고, 중국에서는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섰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휩쓸었다.
제21장 15세기의 불교
1401년~1500년
티베트에서 겔룩파가 자리 잡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상좌부 불교가 국가 종교로 확립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이 완성되었고,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인쇄술이 유럽에 퍼졌고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다.
제22장 16세기의 불교
1501년~1600년
달라이 라마 제도의 시작
몽골과 티베트의 관계 속에서 달라이 라마 칭호가 생겼고, 겔룩파가 티베트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의 무장 세력이 대사찰의 힘을 꺾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오스만이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이 정복과 선교를 함께 진행했고, 인도에는 무굴 제국이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불교 — 선교와 전파
예수회 선교사가 일본과 중국에 도착하면서 두 종교가 본격적으로 만났다. 초기에는 상호 관심과 오해가 함께 있었다.
제23장 17세기의 불교
1601년~1700년
티베트에서 5대 달라이 라마가 정치·종교 권력을 함께 쥐었고, 일본에서는 막부 아래 사찰이 호적 관리 기능을 맡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30년전쟁과 영국 내전이 유럽을 흔들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오스만은 1683년 빈 포위 실패 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불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중국 선교에서 조상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전례 논쟁이 벌어졌다. 문화와 신앙의 경계를 묻는 문제였다.
제24장 18세기의 불교
1701년~1800년
동남아시아에서 왕실의 후원 아래 승가 개혁이 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사찰이 제도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계몽주의가 유럽 사상을 바꾸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제25장 19세기의 불교
1801년~1900년
근대 불교의 형성
기독교 선교에 대한 대응과 서구 학문과의 만남 속에서 불교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종교’로 다시 설명했다. 스리랑카·일본·태국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산업혁명과 제국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묶었다. 민족주의가 퍼졌고, 과학과 역사학이 종교 이해를 흔들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불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스리랑카의 공개 논쟁과 일본의 배불 정책 이후 재정비 과정에서 두 종교가 본격적으로 마주했다. 불교의 근대적 자기 이해는 이 만남 속에서 형성된 면이 있다.
이 시대의 사건
일본의 신불분리와 폐불훼석 (1868년~1874년)
새 정부가 천황 중심의 국가 신도를 세우려 하면서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려 했다.
- 일본 불교가 제도적 기반을 크게 잃었다
파나두라 논쟁 (1873년)
식민 통치 아래에서 기독교 선교가 활발했고, 불교계가 공개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 불교 부흥 운동에 큰 힘이 실렸다
시카고 세계종교회의 (1893년)
만국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세계의 여러 종교 대표를 한자리에 모으는 시도가 이뤄졌다.
- 아시아 종교가 서구 대중에게 직접 소개되었다
제26장 20세기의 불교
1901년~2000년
세계로 흩어진 불교
티베트 불교가 망명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고, 선(禪)과 명상이 서구에 확산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공산 정권과 근대화 속에서 큰 변동을 겪었다. 참여불교라는 사회 참여 흐름도 나타났다.
같은 시대의 세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화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후반에는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며 종교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불교 ↔ 기독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명상과 영성 분야에서 두 전통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수도자들 사이의 대화가 제도화되었다.
제27장 21세기의 불교
2001년~2100년
명상과 마음챙김이 종교 밖으로도 퍼졌다.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 불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해 갈등에 연루되는 문제도 나타났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세계화, 대규모 이주,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성 정치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불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종교 정체성이 민족 갈등과 겹치며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어느 종교든 다수 종교가 되면 같은 위험을 안는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사건
감염병 유행과 온라인 예배의 확산 (2020년~2022년)
전 세계적 감염병 유행으로 모임 자체가 제한되었다.
- 종교 활동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참고문헌
- 히브리 성경 열왕기하·에스라 (전승 자료)
- 바빌론 연대기, 키루스 원통 비문 (1차 사료)
- 초기 불교 팔리 문헌과 연대 논쟁을 다룬 연구서
-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승 자료)
- 엘레판티네 파피루스 (1차 사료)
-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서, 초기 불교사 개설서
- 헬레니즘 시대 개설서
-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
- 초기 불교 부파 형성에 관한 연구
- 아쇼카 칙령 비문 (1차 사료)
- 70인역 성립에 관한 연구
- 헬레니즘 유대교 연구서
- 마카베오서,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전승·후대 서술)
- 사해문서 (1차 사료)
- 《밀린다왕문경》 (불교 전승 문헌)
-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 헤롯 성전 관련 고고학 보고
- 제2성전기 종말론 연구
- 타키투스 《연대기》,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1차·근접 사료)
- 신약성서 본문 (종교 전통 문헌이자 1세기 자료)
-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분화에 관한 표준 연구서
- 카시우스 디오 등 로마 사가의 서술
-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 초기 한역 불전 연구
-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 미쉬나 본문
- 3세기 로마사 연구
- 에우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 니케아 신경 본문
- 후기 로마 제국 연구서
- 칼케돈 공의회 문서
-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 바빌로니아 탈무드
- 동아시아 불교 번역사 연구
- 프로코피우스의 저작
- 베네딕도 규칙
- 《일본서기》 등 동아시아 사서
- 초기 이슬람사 연구서와 사료 비판 연구
- 동로마·시리아어 연대기 (외부 시선의 근접 사료)
- 현장 《대당서역기》
- 아바스 시대 번역 운동 연구
-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 일본 나라 시대 사료
- 《슬라브인의 사도》 전기 자료
- 당 회창폐불 관련 사서
- 아바스 학문사 연구
- 《원초 연대기》(루스 개종 기사)
- 이베리아 유대 문학 연구
- 송 대장경 인쇄 연구
- 십자군 연대기(라틴어·아랍어·히브리어 기록을 함께 볼 것)
- 1054년 관련 문서와 최근 연구
- 라시 주석, 가잘리 저작
- 아랍어·라틴어 십자군 연대기
- 마이모니데스 저작
- 톨레도 번역 학파 연구
- 제4차 십자군 연대기
-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문서
- 몽골 시대 이슬람사 연구
- 흑사병 관련 연대기와 연구
- 콘스탄츠 공의회 문서
- 이븐 할둔 《역사서설》
- 오스만 정복 관련 사료
- 1492년 추방령 문서
- 인쇄술과 종교개혁 연구
- 95개 논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 문서 (1차 사료)
- 칼뱅 《기독교 강요》
- 오스만·사파비·무굴사 연구
- 베스트팔렌 조약문
- 전례 논쟁 관련 문서
- 17세기 유대사 연구
- 웨슬리 일기
- 프랑스 혁명기 종교 정책 자료
- 하시디즘 연구
- 선교 단체 기록
- 파나두라 논쟁 기록
- 근대 반유대주의 연구
- 〈우리 시대〉(Nostra Aetate) 본문
- 바르멘 선언 본문
- 홀로코스트 연구와 증언 자료
- 20세기 세계 종교 인구 통계
-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2007) 본문
- 〈인간 형제애〉(2019) 본문
- 세계 종교 인구 통계(퓨 리서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