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 별권
가톨릭 역사
로마·서지중해에서 오늘까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차례
- 제1장 4세기의 가톨릭
- 제2장 5세기의 가톨릭
- 제3장 6세기의 가톨릭
- 제4장 7세기의 가톨릭
- 제5장 8세기의 가톨릭
- 제6장 9세기의 가톨릭
- 제7장 10세기의 가톨릭
- 제8장 11세기의 가톨릭
- 제9장 12세기의 가톨릭
- 제10장 13세기의 가톨릭
- 제11장 14세기의 가톨릭
- 제12장 15세기의 가톨릭
- 제13장 16세기의 가톨릭
- 제14장 17세기의 가톨릭
- 제15장 18세기의 가톨릭
- 제16장 19세기의 가톨릭
- 제17장 20세기의 가톨릭
- 제18장 21세기의 가톨릭
이 책이 다루는 것
- 기원과 형성
- 확산
- 내부 분화
- 정치·사회와의 관계
- 현대적 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4세기의 가톨릭
301년~400년
라틴어를 쓰는 서방교회 전통이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로 이어지지만, 이 시기를 ‘가톨릭’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의 이름을 앞당겨 붙이는 일이다.
같은 시대의 세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과 대박해를 지나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 수도가 되었고, 395년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가 일어났다.
이 시대의 사건
니케아 공의회 (325년)
아리우스의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 동방 교회 전체로 번졌다.
-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고 아리우스의 주장이 배척되었다
제2장 5세기의 가톨릭
401년~500년
서방에서 로마 주교의 위상이 높아졌고, 무너진 제국 행정 대신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이동 속에서 해체되고 여러 왕국이 세워졌다.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인도 굽타 왕조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사건
에페소 공의회 (431년)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이’라 부를 수 있는가를 두고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충돌했다.
- ‘하나님을 낳은 이’ 호칭이 승인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451년)
에페소 이후에도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을 설명하는 방식을 두고 대립이 이어졌다.
- 칼케돈 정의가 채택되었다
제3장 6세기의 가톨릭
501년~600년
서방 라틴 교회가 수도원과 로마 주교를 축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옛 로마 영토의 일부를 되찾고 법전을 정비했다. 서유럽은 게르만 왕국들의 시대였고, 중국은 589년 수나라로 다시 통일되었다.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졌다.
이 시대의 사건
베네딕도 규칙의 제정 (529년)
서로마가 무너진 뒤 수도 생활의 기준이 지역마다 제각각이었다.
- 기도와 노동, 순명과 정주를 축으로 한 수도 생활이 자리 잡았다
제4장 7세기의 가톨릭
601년~700년
서방 라틴 교회가 잉글랜드·프랑크 지역 선교로 기반을 넓혔다. 로마 주교의 지도력이 서방에서 점점 커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을 때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일어났다. 사산조는 무너졌고 동로마는 시리아·이집트를 잃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열었다.
제5장 8세기의 가톨릭
701년~800년
교황과 황제의 동맹
로마 교회는 동로마 대신 프랑크 왕국을 후원자로 택했다. 이 선택이 이후 서유럽에서 교황권이 갖는 위치를 결정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세웠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왕조가 일어나 800년 대관식으로 이어졌다. 당은 안사의 난으로 흔들렸고, 일본은 나라 시대를 맞았다.
이 시대의 사건
카롤루스의 황제 대관 (800년)
교황이 동로마 대신 프랑크 왕국을 후원자로 택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다.
- 서방에 별도의 ‘황제’가 생겼다
제6장 9세기의 가톨릭
801년~900년
카롤루스 제국의 분열 속에서 교황권과 세속 권력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카롤루스 제국이 분열하며 서유럽의 윤곽이 잡혔다. 바이킹의 이동이 유럽을 흔들었고,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으로 약해졌지만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당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슬라브 선교의 관할권과 신경의 표현(필리오케)을 둘러싸고 동서 교회가 부딪쳤다. 1054년 이전에 이미 갈등이 쌓이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건
슬라브 선교와 문자 창제 (863년)
모라비아의 군주가 자기 말로 가르칠 선교사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요청했다.
- 슬라브어로 예배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7장 10세기의 가톨릭
901년~1000년
수도원 개혁의 시작
클뤼니를 중심으로 한 개혁 운동은 세속 권력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흐름이었고, 다음 세기 교황권 강화로 이어진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지고 봉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 세계는 아바스·파티마·후우마이야로 나뉘었다. 중국에서는 송이 통일을 이루고 인쇄술이 발전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선교와 전파
동유럽 각 민족이 어느 쪽 교회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가를 두고 두 교회가 경쟁했다. 폴란드는 서방, 루스는 동방을 택했다.
이 시대의 사건
클뤼니 수도원 설립과 개혁 운동 (910년)
지역 영주가 수도원장을 임명하고 교회 재산을 좌우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었다.
- 개혁된 수도원 연합망이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제8장 11세기의 가톨릭
1001년~1100년
교황권의 세기
개혁 운동을 거쳐 교황이 서유럽 전체를 향해 발언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클레르몽의 호소가 실제로 수만 명을 움직인 것이 그 힘을 보여 준다.
- 교황이 황제를 파문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카노사 사건.
- 십자군 참가자에게 주어진 영적 보상이 대규모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을 장악하고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동로마를 크게 이겼다. 서유럽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서임권을 두고 다투었고, 노르만인이 잉글랜드와 남이탈리아를 차지했다. 중국은 송, 인도 북부는 가즈니 왕조의 침입을 겪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신경의 필리오케 표현, 무교병 사용, 로마 주교의 권위 범위가 쟁점이었다. 언어가 달라 서로의 문헌을 읽지 못한 것도 오해를 키웠다.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십자군 출발 과정에서 라인란트 유대인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종교적 열정이 가장 가까운 소수자에게 먼저 향한 사례다.
이 시대의 사건
동서 교회의 상호 파문 (1054년)
언어(라틴어·그리스어), 전례 관습, 신경의 필리오케 표현, 로마 주교의 권위 범위를 둘러싼 차이가 수백 년에 걸쳐 쌓여 있었다.
- 양측 지도부 사이의 공식 단절
클레르몽 교회회의와 원정 호소 (1095년)
만지케르트 패배 후 동로마 황제가 서방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 수만 명 규모의 원정이 조직되었다
라인란트 유대인 학살 (1096년)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하려 모인 무리 가운데 일부가 출발 전 유대인 공동체를 습격했다.
- 여러 공동체가 사실상 소멸했다
제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3년에 걸친 원정 끝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 예루살렘 왕국 등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다
제9장 12세기의 가톨릭
1101년~1200년
시토회 개혁, 대학 성립, 십자군의 계속 — 교황권이 유럽 전체를 조율하는 시대였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십자군 국가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았다가 살라딘에게 밀렸다. 서유럽에서는 도시와 대학이 성장했고,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 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무사 정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건
톨레도 번역 학파 (1130년~1200년)
1085년 톨레도가 기독교 왕국에 넘어가면서 아랍어 장서가 그대로 남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학·수학·천문학 문헌이 라틴 유럽에 들어왔다
하틴 전투와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 (1187년)
십자군 국가들이 내부 분열을 겪는 사이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했다.
- 예루살렘이 88년 만에 무슬림 통치로 돌아갔다
- 제3차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요크 유대인 학살 (1190년)
제3차 십자군 준비 열기 속에 잉글랜드 여러 도시에서 유대인 공격이 이어졌다.
- 요크의 유대인 공동체가 사실상 소멸했다
제10장 13세기의 가톨릭
1201년~1300년
교황권이 절정에 이르렀고 신학·법·조직이 정교해졌다. 그 힘은 통제로도 쓰였다.
같은 시대의 세계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렀고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서유럽에서는 대학과 탁발수도회가 성장했다. 인도에는 델리 술탄국이,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가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전쟁과 충돌
1204년 약탈은 두 교회 관계에서 1054년보다 더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2001년 교황이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복장 규정, 탈무드 소각, 강제 논쟁이 이어졌다. 제도가 차별을 공식화한 시기다.
이 시대의 사건
제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 (1204년)
성지로 향하던 원정이 뱃삯 문제와 동로마 왕위 다툼에 얽혀 방향을 잃었다.
- 라틴 제국이 세워져 반세기 넘게 도시를 지배했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교황권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교회 전반의 규율을 정비하려 했다.
- 해마다 고해와 영성체를 하도록 정했다
-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구별되는 복장을 요구했다
제11장 14세기의 가톨릭
1301년~1400년
아비뇽 시기와 대분열로 교황권의 도덕적 권위가 크게 손상되었다. 개혁 요구가 쌓였다.
같은 시대의 세계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유럽을 흔들었다.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했고, 중국에서는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섰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휩쓸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흑사병기 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는 전형적 사례다. 일부 교황과 지역 지도자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널리 퍼졌다.
이 시대의 사건
아비뇽 교황청 시기 (1309년~1377년)
교황과 프랑스 왕의 충돌 끝에 교황청이 로마를 떠나 프랑스 남부에 자리 잡았다.
- 교황청 관료제와 재정 체계가 정비되었다
흑사병과 유대인 학살 (1347년~1351년)
몇 해 사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가량이 사라지는 대유행이 닥쳤다.
- 수백 곳의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서방 교회의 대분열 (1378년~1417년)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온 직후의 선거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 유럽 각국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서로 다른 교황을 지지했다
위클리프의 개혁 요구와 영어 성경 (1380년)
교회의 재산과 권위에 대한 비판이 잉글랜드에서 커지고 있었다.
- 영어 성경이 필사로 퍼졌다
제12장 15세기의 가톨릭
1401년~1500년
대분열은 수습되었지만 개혁 요구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베리아에서는 종교재판이 강화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이 완성되었고,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인쇄술이 유럽에 퍼졌고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1439년 피렌체 공의회의 재결합 선언은 정치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고, 동방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 시대의 사건
얀 후스의 화형 (1415년)
대분열을 수습하려 열린 공의회가 개혁 문제도 함께 다뤘다.
- 체코에서 후스 전쟁이 일어났다
피렌체 공의회의 재결합 시도 (1439년)
오스만의 압박을 받던 동로마가 서방의 군사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 형식상 재결합이 선언되었다
구텐베르크의 성경 인쇄 (1455년)
금속 활자와 유성 잉크, 압착기를 결합한 인쇄술이 완성되었다.
- 책을 대량으로 똑같이 찍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라나다 함락과 유대인 추방령 (1492년)
이베리아 재정복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종교적 단일화 정책이 강화되었다.
- 이베리아의 이슬람 통치가 끝났다
- 수만 명의 유대인이 추방되었다
- 대서양 항해가 시작되었다
제13장 16세기의 가톨릭
1501년~1600년
트리엔트의 개혁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교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성직자 교육·규율·전례를 정비했다. 예수회는 교육과 해외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이 개혁은 개신교에 대한 대응이자 오래된 내부 요구의 결실이었다.
- 성경과 전통을 함께 권위로 인정했다.
- 신학교 제도를 도입해 성직자 교육을 체계화했다.
- 예수회를 통해 아시아·아메리카 선교가 확대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오스만이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이 정복과 선교를 함께 진행했고, 인도에는 무굴 제국이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개신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의 수와 의미, 교회의 권위 구조가 쟁점이었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이 쟁점들을 두고 공식 대화를 이어 오고 있다.
가톨릭 ↔ 개신교 — 전쟁과 충돌
종교적 차이가 제후들의 정치적 이해와 겹치며 전쟁과 학살로 번졌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신앙 선택권을 제후에게 주는 방식의 타협이었다.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게토 제도가 이탈리아에서 확립되었다. 개혁 진영 안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 문헌이 나왔다.
이 시대의 사건
95개 논제 발표 (1517년)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을 위한 면벌부 판매가 독일 지역에서 논란이 되었다.
- 대규모 신학 논쟁이 시작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1545년~1563년)
개신교의 확산과 오래된 내부 개혁 요구가 함께 압력이 되었다.
-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 칭의에 관한 가톨릭의 입장을 정리했다
- 신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1555년)
제국 안에서 가톨릭과 루터파 제후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 일시적 평화가 확보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1572년)
가톨릭과 위그노(프랑스 개혁파)의 갈등이 왕실 혼례를 계기로 폭발했다.
- 프랑스 종교전쟁이 격화되었다
제14장 17세기의 가톨릭
1601년~1700년
해외 선교가 확대되는 한편, 유럽 내에서는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0년전쟁과 영국 내전이 유럽을 흔들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오스만은 1683년 빈 포위 실패 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학적 화해가 아니라 정치적 공존의 규칙이었다. 진리 문제를 미루고 함께 사는 법을 정한 첫 대규모 시도다.
이 시대의 사건
30년전쟁 (1618년~1648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개혁파(칼뱅)를 포함하지 않았고, 제후들의 종교·정치 이해가 얽혀 있었다.
- 중부 유럽 일부 지역에서 인구가 3분의 1 이상 줄었다
갈릴레오 재판 (1633년)
지구가 움직인다는 주장이 성경 해석과 충돌한다는 판단이 있었다.
- 지동설 관련 저작이 금서 목록에 올랐다
시마바라 봉기와 일본의 기독교 금지 (1637년~1638년)
선교로 신자가 늘었으나 막부는 기독교를 통치의 위협으로 보고 탄압을 강화했다.
- 기독교 금지가 철저해지고 쇄국 정책이 굳어졌다
제15장 18세기의 가톨릭
1701년~1800년
혁명과 계몽 사상의 도전에 직면했다. 프랑스 혁명기에 교회 재산이 몰수되고 성직자가 박해받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계몽주의가 유럽 사상을 바꾸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이 시대의 사건
프랑스 혁명과 탈기독교화 (1789년~1794년)
교회는 프랑스에서 최대의 지주였고 신분제의 한 축이었다.
- 교회가 국가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폭력적으로 시작되었다
제16장 19세기의 가톨릭
1801년~1900년
근대 사상에 맞서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1891년 노동 문제에 관한 회칙으로 사회 교리의 출발점을 놓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산업혁명과 제국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묶었다. 민족주의가 퍼졌고, 과학과 역사학이 종교 이해를 흔들었다.
이 시대의 사건
성서 역사비평의 확산 (1835년~1900년)
역사학과 문헌학의 방법이 성경 연구에 본격 적용되었다.
- 성경을 역사 문헌으로 읽는 학문 분야가 자리 잡았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 (1869년~1870년)
교황령이 축소되고 근대 사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권위를 분명히 하려 했다.
-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이 교의로 선포되었다
제17장 20세기의 가톨릭
1901년~2000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모국어 전례,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관계, 타 종교에 대한 태도, 종교 자유에 관한 문서를 채택하며 가톨릭교회가 근현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꿨다.
같은 시대의 세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화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후반에는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며 종교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동방정교회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1965년 상호 파문 철회로 900년 만에 공식 관계가 회복되었다. 다만 신학적·관할권 문제는 남아 있다.
가톨릭 ↔ 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교회 일치 운동과 신학 대화가 진행되었고, 1999년 칭의론에 관한 공동선언이 나왔다.
이 시대의 사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년~1965년)
근현대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 쌓여 있었다.
- 모국어 전례를 허용했다
-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일치 운동에 참여를 표명했다
- 종교 자유를 인정하는 선언을 채택했다
- 〈우리 시대〉로 타 종교, 특히 유대교와의 관계를 새로 정리했다
제18장 21세기의 가톨릭
2001년~2100년
2013년 이후 사회·환경 문제와 종교 간 대화에 힘을 실었다. 남반구 신자가 다수인 교회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세계화, 대규모 이주,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성 정치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
이 시대의 사건
〈인간 형제애〉 문서 서명 (2019년)
가톨릭과 수니 이슬람의 대표적 기관 사이에 대화가 여러 해 이어져 왔다.
-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함께 규탄하고 공존을 선언했다
참고문헌
- 에우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 니케아 신경 본문
- 후기 로마 제국 연구서
- 칼케돈 공의회 문서
-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 바빌로니아 탈무드
- 동아시아 불교 번역사 연구
- 프로코피우스의 저작
- 베네딕도 규칙
- 《일본서기》 등 동아시아 사서
- 초기 이슬람사 연구서와 사료 비판 연구
- 동로마·시리아어 연대기 (외부 시선의 근접 사료)
- 현장 《대당서역기》
- 아바스 시대 번역 운동 연구
-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 일본 나라 시대 사료
- 《슬라브인의 사도》 전기 자료
- 당 회창폐불 관련 사서
- 아바스 학문사 연구
- 《원초 연대기》(루스 개종 기사)
- 이베리아 유대 문학 연구
- 송 대장경 인쇄 연구
- 십자군 연대기(라틴어·아랍어·히브리어 기록을 함께 볼 것)
- 1054년 관련 문서와 최근 연구
- 라시 주석, 가잘리 저작
- 아랍어·라틴어 십자군 연대기
- 마이모니데스 저작
- 톨레도 번역 학파 연구
- 제4차 십자군 연대기
-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문서
- 몽골 시대 이슬람사 연구
- 흑사병 관련 연대기와 연구
- 콘스탄츠 공의회 문서
- 이븐 할둔 《역사서설》
- 오스만 정복 관련 사료
- 1492년 추방령 문서
- 인쇄술과 종교개혁 연구
- 95개 논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 문서 (1차 사료)
- 칼뱅 《기독교 강요》
- 오스만·사파비·무굴사 연구
- 베스트팔렌 조약문
- 전례 논쟁 관련 문서
- 17세기 유대사 연구
- 웨슬리 일기
- 프랑스 혁명기 종교 정책 자료
- 하시디즘 연구
- 선교 단체 기록
- 파나두라 논쟁 기록
- 근대 반유대주의 연구
- 〈우리 시대〉(Nostra Aetate) 본문
- 바르멘 선언 본문
- 홀로코스트 연구와 증언 자료
- 20세기 세계 종교 인구 통계
-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2007) 본문
- 〈인간 형제애〉(2019) 본문
- 세계 종교 인구 통계(퓨 리서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