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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 한눈 · 별권

이슬람교 역사

아라비아반도에서 오늘까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차례

  1. 제1장 7세기의 이슬람교
  2. 제2장 8세기의 이슬람교
  3. 제3장 9세기의 이슬람교
  4. 제4장 10세기의 이슬람교
  5. 제5장 11세기의 이슬람교
  6. 제6장 12세기의 이슬람교
  7. 제7장 13세기의 이슬람교
  8. 제8장 14세기의 이슬람교
  9. 제9장 15세기의 이슬람교
  10. 제10장 16세기의 이슬람교
  11. 제11장 17세기의 이슬람교
  12. 제12장 18세기의 이슬람교
  13. 제13장 19세기의 이슬람교
  14. 제14장 20세기의 이슬람교
  15. 제15장 21세기의 이슬람교

이 책이 다루는 것

  • 기원과 형성
  • 확산
  • 내부 분화
  • 정치·사회와의 관계
  • 현대적 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7세기의 이슬람교

601년~700년

한 세대 만에 제국이 되다

무함마드의 활동으로 시작된 신앙 공동체는 그의 사후 급속히 확장했다. 유일신 신앙, 예언자 전통, 성서의 백성에 대한 인식 등에서 유대교·기독교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두 종교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가까움과 논쟁을 함께 안고 있었다. 지도자 계승 문제는 수니·시아 전통이 갈라지는 뿌리가 되었다.

  • 622년 히즈라가 이슬람력의 기점이다.
  • 쿠란은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를 모은 것으로 신앙된다.
  • 656~661년 내전과 680년 카르발라 사건이 수니·시아 분기의 배경이다.
  • 정복은 대체로 개종 강요가 아니라 세금과 지배 체제의 변화로 진행되었다. 개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을 때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일어났다. 사산조는 무너졌고 동로마는 시리아·이집트를 잃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신학적으로는 유일신 신앙과 율법 중심의 생활에서 닮은 점이 많다.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동로마와의 전쟁으로 시리아·이집트·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지역이 이슬람 통치 아래 들어갔다. 군사적 충돌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가 계속 존재하는 공존 구조도 만들어졌다.

이 시대의 사건

히즈라(메카에서 메디나로의 이주) (622년)

메카의 지도층이 무함마드와 그 추종자들을 배척하면서 공동체의 존립이 어려워졌다.

  • 신앙 공동체가 정치 공동체의 성격을 함께 갖게 되었다

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638년)

동로마와 사산조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시리아·팔레스타인이 차례로 무슬림 세력에 넘어갔다.

  • 기독교 주민과 성소의 존속이 인정되었다
  • 유대인의 거주가 다시 허용되었다

카르발라 사건 (680년)

무함마드 사후 공동체 지도자의 자격과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졌다.

  • 우마이야 왕조의 지배가 굳어졌다

제2장 8세기의 이슬람교

701년~800년

정복에서 학문으로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세우고 그리스·페르시아·인도의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 운동은 이후 유럽이 고대 학문을 되찾는 통로가 된다. 이베리아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이 자리 잡았다.

  • 번역 운동으로 의학·수학·천문학·철학이 발전했다.
  • 이슬람 법학(피크흐)의 주요 학파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 하디스 수집과 검증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세웠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왕조가 일어나 800년 대관식으로 이어졌다. 당은 안사의 난으로 흔들렸고, 일본은 나라 시대를 맞았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베리아와 지중해에서 두 세계는 전쟁만 한 것이 아니라 교역하고 배웠다. 아바스의 번역 운동은 훗날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711년 이베리아 진출과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두 세계의 경계가 정해지는 과정이었다.

이 시대의 사건

무슬림 세력의 이베리아 진출 (711년)

서고트 왕국 내부의 왕위 다툼으로 방어가 흔들리던 때였다.

  • 이베리아에 이슬람 통치가 시작되었다

아바스 혁명과 바그다드 건설 (750년~762년)

아랍인 우대 정책에 대한 비아랍 무슬림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 정치 중심이 시리아에서 이라크로 옮겨졌다

제3장 9세기의 이슬람교

801년~900년

학문의 절정, 정치의 분열

칼리프의 실질 권력이 약해지는 동안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의학·수학·천문학의 성과가 뒤에 유럽으로 전해진다.

같은 시대의 세계

카롤루스 제국이 분열하며 서유럽의 윤곽이 잡혔다. 바이킹의 이동이 유럽을 흔들었고,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으로 약해졌지만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당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제4장 10세기의 이슬람교

901년~1000년

세 개의 중심

바그다드의 아바스, 카이로의 파티마,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가 각각 칼리프를 칭하며 경쟁했다. 정치적 분열은 오히려 여러 도시에서 문화가 꽃피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지고 봉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 세계는 아바스·파티마·후우마이야로 나뉘었다. 중국에서는 송이 통일을 이루고 인쇄술이 발전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베리아에서 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이 함께 살며 학문과 문학을 주고받았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상호 영향은 뚜렷했다.

이 시대의 사건

코르도바 칼리프국 선포 (929년)

이베리아를 다스리던 우마이야 가문이 바그다드·카이로와 대등함을 내세우려 했다.

  • 코르도바가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이자 학문 중심지가 되었다

제5장 11세기의 이슬람교

1001년~1100년

셀주크의 시대, 가잘리의 종합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고, 마드라사 제도가 확산되며 학문이 제도화되었다. 가잘리는 법학·신학·철학·수피 영성을 잇는 저작으로 이후 수니 이슬람 사상의 방향을 정했다.

  • 십자군의 도착은 지역 세력 다툼 속의 한 사건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 마드라사가 학문 교육의 표준 기관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을 장악하고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동로마를 크게 이겼다. 서유럽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서임권을 두고 다투었고, 노르만인이 잉글랜드와 남이탈리아를 차지했다. 중국은 송, 인도 북부는 가즈니 왕조의 침입을 겪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주민을 학살했다. 이 기억은 이후 두 세계의 관계에 오래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 시대의 사건

제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3년에 걸친 원정 끝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 예루살렘 왕국 등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다

제6장 12세기의 이슬람교

1101년~1200년

살라딘과 철학자들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은 관용적 처리로 기억된다. 사상 면에서는 이븐 루시드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이 유럽 스콜라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187년 예루살렘 접수는 1099년과 달리 학살 없이 이뤄졌다.
  • 이븐 루시드는 유럽에서 ‘아베로에스’로 알려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십자군 국가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았다가 살라딘에게 밀렸다. 서유럽에서는 도시와 대학이 성장했고,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 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무사 정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아랍어 문헌이 라틴어로 옮겨졌다. 유대인 학자들이 중간 언어를 다루며 이 작업에 참여했다. 전쟁과 번역이 같은 세기에 나란히 일어났다.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제2차·제3차 십자군이 이어졌다. 1187년 살라딘의 예루살렘 접수는 1099년과 대비되어 자주 언급된다.

불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북인도의 정치 변동 속에서 불교 대사원이 파괴되었다. 다만 인도 불교의 쇠퇴는 이전부터 진행된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이 시대의 사건

톨레도 번역 학파 (1130년~1200년)

1085년 톨레도가 기독교 왕국에 넘어가면서 아랍어 장서가 그대로 남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학·수학·천문학 문헌이 라틴 유럽에 들어왔다

하틴 전투와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 (1187년)

십자군 국가들이 내부 분열을 겪는 사이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했다.

  • 예루살렘이 88년 만에 무슬림 통치로 돌아갔다
  • 제3차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인도 불교 대사원의 파괴 (1193년)

북인도의 정치 질서가 무너지고 새 세력이 갠지스 유역으로 들어왔다.

  • 인도 본토 불교 교단의 학문 중심이 무너졌다

제7장 13세기의 이슬람교

1201년~1300년

칼리프조의 종말과 새로운 중심

몽골의 바그다드 함락으로 아바스 칼리프조가 끝났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이집트 맘루크 왕조와 이후 몽골계 지배자들의 개종을 통해 새 중심이 만들어졌다.

  • 정복자가 오히려 피정복 종교로 개종한 대표적 사례다.
  • 델리 술탄국을 통해 이슬람이 인도 아대륙에 자리 잡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렀고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서유럽에서는 대학과 탁발수도회가 성장했다. 인도에는 델리 술탄국이,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가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이슬람교 ↔ 불교 — 정치적 협력

몽골 제국 아래에서 여러 종교가 한 정치 질서 안에 놓였다. 지배층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불교·이슬람·기독교를 각각 후원하기도 했다.

이 시대의 사건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교황권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교회 전반의 규율을 정비하려 했다.

  • 해마다 고해와 영성체를 하도록 정했다
  •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구별되는 복장을 요구했다

몽골의 바그다드 함락 (1258년)

몽골이 서쪽으로 진격하며 이란과 이라크를 차례로 장악했다.

  • 5백 년 이어진 아바스 칼리프조가 끝났다

제8장 14세기의 이슬람교

1301년~1400년

오스만의 부상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하며 동유럽 종교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문에서는 이븐 할둔이 문명의 흥망을 설명하는 독창적 역사 이론을 내놓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유럽을 흔들었다.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했고, 중국에서는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섰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휩쓸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오스만의 발칸 진출로 남동유럽에서 두 종교의 접촉면이 넓어졌다.

제9장 15세기의 이슬람교

1401년~1500년

오스만의 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차지한 오스만은 지중해 동부의 지배자가 되었고, 밀레트 제도로 여러 종교 공동체를 관리했다. 이베리아에서는 반대로 무슬림이 추방·개종을 강요당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이 완성되었고,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인쇄술이 유럽에 퍼졌고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정치적 협력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다수를 오스만 제국이 받아들였다. 같은 세기에 한쪽에서는 추방이, 다른 쪽에서는 수용이 일어났다.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동쪽에서는 오스만이 기독교 제국을 무너뜨렸고, 서쪽에서는 기독교 왕국이 무슬림 왕국을 무너뜨렸다. 같은 세기에 반대 방향의 두 일이 일어났다.

이 시대의 사건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년)

동로마는 도시 하나만 남은 상태였고, 오스만은 대포를 앞세워 포위했다.

  • 천 년 넘게 이어진 동로마 제국이 끝났다
  • 하기아 소피아가 모스크가 되었다

그라나다 함락과 유대인 추방령 (1492년)

이베리아 재정복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종교적 단일화 정책이 강화되었다.

  • 이베리아의 이슬람 통치가 끝났다
  • 수만 명의 유대인이 추방되었다
  • 대서양 항해가 시작되었다

제10장 16세기의 이슬람교

1501년~1600년

세 제국의 시대

오스만·사파비·무굴 세 제국이 이슬람 세계를 나눠 다스렸다. 사파비가 시아 이슬람을 국교로 삼으면서 오스만과의 대립이 종파 대립과 겹쳤다. 무굴의 아크바르는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정책을 폈다.

  • 1517년 이후 오스만 술탄이 성지 관리자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 사파비의 시아 국교화가 오늘날 이란의 종교 지형을 만들었다.
  • 아크바르는 종교 간 토론을 궁정에서 열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오스만이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이 정복과 선교를 함께 진행했고, 인도에는 무굴 제국이 섰다.

제11장 17세기의 이슬람교

1601년~1700년

확장의 끝

1683년 빈 포위 실패 이후 오스만은 유럽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무굴에서는 아우랑제브의 정책이 종교 간 관계를 경직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0년전쟁과 영국 내전이 유럽을 흔들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오스만은 1683년 빈 포위 실패 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제12장 18세기의 이슬람교

1701년~1800년

정화 운동의 시작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와하비 운동은 후대의 관행을 걷어내고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슬람 세계의 논쟁 지점 가운데 하나다.

같은 시대의 세계

계몽주의가 유럽 사상을 바꾸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이 시대의 사건

와하비 운동과 사우드 가문의 동맹 (1744년)

후대에 더해진 관행을 걷어 내고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나왔다.

  • 아라비아 중부에 새로운 정치·종교 체제가 세워졌다

제13장 19세기의 이슬람교

1801년~1900년

개혁과 응답

식민 지배와 근대 문물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두고 개혁 사상이 일어났다. 이슬람의 원리와 근대 과학·제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핵심 물음이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산업혁명과 제국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묶었다. 민족주의가 퍼졌고, 과학과 역사학이 종교 이해를 흔들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선교와 전파

선교와 식민 지배가 겹치면서,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는 종교이자 서구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이 시대의 사건

시카고 세계종교회의 (1893년)

만국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세계의 여러 종교 대표를 한자리에 모으는 시도가 이뤄졌다.

  • 아시아 종교가 서구 대중에게 직접 소개되었다

제14장 20세기의 이슬람교

1901년~2000년

탈식민 이후의 길 찾기

독립한 무슬림 국가들이 어떤 체제를 세울 것인가를 두고 세속 민족주의와 이슬람적 국가 구상이 경쟁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종교가 근대 국가의 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으로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석유 경제와 이주로 무슬림 인구가 유럽·북미에 정착했다.
  • 정치적 이슬람 운동과 그에 대한 내부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 이슬람을 하나의 정치 성향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화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후반에는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며 종교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탈식민 과정과 중동 분쟁 속에서 두 종교의 관계가 정치와 깊이 얽혔다. 종교 갈등으로만 설명하면 원인을 놓친다.

이 시대의 사건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실향 (1948년)

19세기 말 시온주의 운동, 영국 위임통치, 홀로코스트 이후의 난민 문제가 겹쳤다.

  • 유대 국가가 수립되었다
  •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고향을 떠났다(나크바)
  • 아랍 국가들에 살던 유대인 다수도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이란 혁명 (1979년)

급속한 근대화 정책, 정치적 억압, 외세 개입에 대한 반발이 쌓였다.

  • 시아 이슬람 법학자가 국가 최고 권위를 갖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제15장 21세기의 이슬람교

2001년~2100년

세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소수 극단 세력의 폭력과 그에 대한 무슬림 사회 내부의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세계화, 대규모 이주,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성 정치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이슬람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공통된 말〉(2007)과 〈인간 형제애〉(2019) 같은 공동 문서가 나왔다. 대화는 진행 중이며 성과와 한계를 함께 봐야 한다.

불교 ↔ 이슬람교 — 전쟁과 충돌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종교 정체성이 민족 갈등과 겹치며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어느 종교든 다수 종교가 되면 같은 위험을 안는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이 시대의 사건

9·11 이후 종교와 안보 담론의 결합 (2001년)

20세기 후반의 정치적 갈등과 극단주의 조직의 활동이 배경에 있었다.

  • 전 세계에서 안보 정책과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다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 서한 (2007년)

9·11 이후 높아진 긴장 속에서 대화의 틀을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 여러 교단과 신학교가 공식 응답을 보냈고 정기 대화가 시작되었다

〈인간 형제애〉 문서 서명 (2019년)

가톨릭과 수니 이슬람의 대표적 기관 사이에 대화가 여러 해 이어져 왔다.

  • 종교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폭력을 함께 규탄하고 공존을 선언했다

감염병 유행과 온라인 예배의 확산 (2020년~2022년)

전 세계적 감염병 유행으로 모임 자체가 제한되었다.

  • 종교 활동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참고문헌

  1. 초기 이슬람사 연구서와 사료 비판 연구
  2. 동로마·시리아어 연대기 (외부 시선의 근접 사료)
  3. 현장 《대당서역기》
  4. 아바스 시대 번역 운동 연구
  5.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6. 일본 나라 시대 사료
  7. 《슬라브인의 사도》 전기 자료
  8. 당 회창폐불 관련 사서
  9. 아바스 학문사 연구
  10. 《원초 연대기》(루스 개종 기사)
  11. 이베리아 유대 문학 연구
  12. 송 대장경 인쇄 연구
  13. 십자군 연대기(라틴어·아랍어·히브리어 기록을 함께 볼 것)
  14. 1054년 관련 문서와 최근 연구
  15. 라시 주석, 가잘리 저작
  16. 아랍어·라틴어 십자군 연대기
  17. 마이모니데스 저작
  18. 톨레도 번역 학파 연구
  19. 제4차 십자군 연대기
  20.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문서
  21. 몽골 시대 이슬람사 연구
  22. 흑사병 관련 연대기와 연구
  23. 콘스탄츠 공의회 문서
  24. 이븐 할둔 《역사서설》
  25. 오스만 정복 관련 사료
  26. 1492년 추방령 문서
  27. 인쇄술과 종교개혁 연구
  28. 95개 논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 문서 (1차 사료)
  29. 칼뱅 《기독교 강요》
  30. 오스만·사파비·무굴사 연구
  31. 베스트팔렌 조약문
  32. 전례 논쟁 관련 문서
  33. 17세기 유대사 연구
  34. 웨슬리 일기
  35. 프랑스 혁명기 종교 정책 자료
  36. 하시디즘 연구
  37. 선교 단체 기록
  38. 파나두라 논쟁 기록
  39. 근대 반유대주의 연구
  40. 〈우리 시대〉(Nostra Aetate) 본문
  41. 바르멘 선언 본문
  42. 홀로코스트 연구와 증언 자료
  43. 20세기 세계 종교 인구 통계
  44.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2007) 본문
  45. 〈인간 형제애〉(2019) 본문
  46. 세계 종교 인구 통계(퓨 리서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