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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 한눈 · 별권

유대교 역사

고대 근동·가나안에서 오늘까지

검수용 교정본 · 배포 금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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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제1장 기원전 20~7세기의 유대교
  2. 제2장 기원전 6세기의 유대교
  3. 제3장 기원전 5세기의 유대교
  4. 제4장 기원전 4세기의 유대교
  5. 제5장 기원전 3세기의 유대교
  6. 제6장 기원전 2세기의 유대교
  7. 제7장 기원전 1세기의 유대교
  8. 제8장 1세기의 유대교
  9. 제9장 2세기의 유대교
  10. 제10장 3세기의 유대교
  11. 제11장 4세기의 유대교
  12. 제12장 5세기의 유대교
  13. 제13장 6세기의 유대교
  14. 제14장 7세기의 유대교
  15. 제15장 8세기의 유대교
  16. 제16장 9세기의 유대교
  17. 제17장 10세기의 유대교
  18. 제18장 11세기의 유대교
  19. 제19장 12세기의 유대교
  20. 제20장 13세기의 유대교
  21. 제21장 14세기의 유대교
  22. 제22장 15세기의 유대교
  23. 제23장 16세기의 유대교
  24. 제24장 17세기의 유대교
  25. 제25장 18세기의 유대교
  26. 제26장 19세기의 유대교
  27. 제27장 20세기의 유대교
  28. 제28장 21세기의 유대교

이 책이 다루는 것

  • 기원과 형성
  • 확산
  • 내부 분화
  • 정치·사회와의 관계
  • 현대적 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기원전 20~7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2000년~기원전 601년

여러 신 가운데 한 분만을 예배하는 길

이스라엘 종교 전통은 고대 근동의 종교 세계 안에서 형성되었다. 성경은 족장들의 부름, 이집트 탈출, 시내산 언약, 왕국과 예언자들의 이야기로 이 시기를 전한다. 역사학계는 이 전승들이 언제 어떻게 문헌이 되었는지를 두고 여러 견해로 나뉘어 있다.

  • 예배의 중심이 여러 성소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이는 과정을 겪었다.
  • 예언자들은 제사보다 정의와 자비를 앞세우는 목소리를 냈다.
  •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무너지면서 남유다에 신앙 전통이 집중되었다.
  • 기원전 622년 요시야의 개혁은 신명기 계열 전통과 연결되어 논의된다.

같은 시대의 세계

이집트 중왕국과 신왕국,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가 번갈아 근동을 지배했다. 인도에서는 인더스 문명이 저물고 베다 문화가 자리 잡았으며, 중국에서는 상나라와 주나라가 이어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 시기에 두 전통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종교 전통은 고대 근동의 제국들 사이에서, 인도 종교문화는 베다 전통 안에서 각각 형성되고 있었다. 만남이 없었다는 사실 자체를 적어 두는 것이 이 앱의 방식이다.

유대교 ↔ 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기독교는 아직 없다. 다만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성경과 예언자 전통, 절기와 언약 개념이 뒤에 기독교가 그대로 물려받는 유산이 된다.

이 시대의 사건

이집트 탈출 전승 (기원전 1250년)

히브리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 탈출해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었다고 전한다. 이 이야기는 유대교 신앙과 절기(유월절)의 뼈대를 이룬다.

  • 이스라엘이 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고 전한다

사마리아 함락과 북이스라엘의 멸망 (기원전 722년)

신아시리아 제국이 근동으로 세력을 넓히는 가운데 북이스라엘이 조공을 끊고 반기를 들었다.

  • 북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졌다
  • 주민 이주와 외지인 정착이 이뤄졌다

요시야의 종교개혁 (기원전 622년)

아시리아의 힘이 약해진 틈에 남유다 요시야 왕이 종교와 정치를 함께 정비했다. 성전을 수리하다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 예배 장소가 예루살렘으로 집중되었다

제2장 기원전 6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600년~기원전 501년

성전을 잃고 책과 공동체를 얻다

성전 파괴와 바빌론 포로기는 유대교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다. 제사를 드릴 성전이 없는 상태에서 안식일 준수, 할례, 율법 낭독, 공동체 모임이 신앙의 중심 표지가 되었다.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일부가 귀환해 제2성전을 세웠지만, 많은 유대인은 바빌론과 이집트에 남았다. 디아스포라가 이때부터 유대교의 상수가 된다.

  • 기원전 586년 제1성전 파괴, 기원전 516년경 제2성전 봉헌.
  • 포로기에 성전 없는 신앙 형태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설명이다.
  • 에스겔·제2이사야 계열 문헌이 이 시기의 신학을 담고 있다.
  • 유대인 공동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사는 형태가 굳어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신바빌로니아가 근동을 지배하다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에 무너졌다. 그리스에서는 폴리스가 성장했고, 중국은 춘추시대 후기로 공자가 활동했으며, 인도에서는 갠지스 유역에 여러 나라가 다투고 있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이 시기에 서로 만나지 않았다. 다만 기원전 6세기는 근동과 인도 양쪽에서 기존 종교 질서를 다시 묻는 움직임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에서 함께 놓고 볼 만하다.

이 시대의 사건

예루살렘 함락과 제1성전 파괴 (기원전 586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남유다가 바빌로니아에 반기를 들었다.

  • 제1성전 파괴와 제사 중단
  • 유다 왕국의 소멸
  • 바빌론 포로기의 시작

키루스 칙령과 귀환 (기원전 538년)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점령하면서 근동의 지배자가 바뀌었다.

  • 유대인 일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 성전 재건이 시작되었다

제2성전 봉헌 (기원전 516년)

귀환자들이 성전 재건을 시작했으나 자금과 이웃 세력의 반대로 오래 지체되었다.

  • 제사 제도가 다시 시작되었다

제3장 기원전 5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500년~기원전 401년

책의 종교로 굳어지다

제2성전기의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작은 지방이었다. 이 시기에 토라를 공적으로 낭독하고 그것을 공동체 규범으로 삼는 형태가 굳어졌다.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거리도 이 무렵부터 벌어지기 시작한다.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에스라의 율법 낭독이 상징적 사건으로 전해진다.
  • 제사장 계층이 공동체의 지도력을 쥐었다.
  • 엘레판티네 파피루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실제 생활을 보여 주는 1차 사료다.
  •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이 시기를 거치며 자리 잡는다.

같은 시대의 세계

페르시아 제국이 근동을 지배했고,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뒤 아테네가 전성기를 맞았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소모되었다. 인도에서는 마가다가 강국으로 떠올랐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여전히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기에 양쪽 모두 ‘스승이 떠난 뒤 가르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 유대교는 글로 적힌 토라를 읽고 해석하는 길을, 불교는 함께 외워 확인하는 길을 택했다.

이 시대의 사건

에스라의 율법 낭독 (기원전 458년)

제사장이자 서기관인 에스라가 바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다고 전한다.

  • 토라가 공동체의 공적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 (기원전 445년)

귀환 이후에도 예루살렘은 성벽이 무너진 채였고 공동체는 흔들렸다.

  • 도성의 형태가 회복되고 공동체 규율이 정비되었다

제4장 기원전 4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400년~기원전 301년

그리스어 세계 속의 유대인

알렉산드로스 이후 유대인은 헬레니즘 문화와 마주했다.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늘었고, 예루살렘 안에서도 헬레니즘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두고 긴장이 생겼다. 이 긴장은 다음 두 세기에 걸쳐 커진다.

  • 제사장 가문이 정치적 지도력을 함께 쥐고 있었다.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큰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 헬레니즘 수용을 둘러싼 내부 갈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 서북부까지 진출했다. 그의 사후 제국은 프톨레마이오스·셀레우코스 등으로 갈라져 헬레니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일어났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지중해와 인도가 하나의 교역·문화 통로로 이어졌다. 두 종교의 직접 만남을 보여 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이후 세기의 접촉을 가능하게 한 길이 이때 열렸다.

이 시대의 사건

알렉산드로스의 근동 정복 (기원전 334~323년)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아우른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다.

  • 아케메네스 제국이 무너지고 헬레니즘 세계가 열렸다

제5장 기원전 3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300년~기원전 201년

성경이 번역되다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는 히브리어를 잘 읽지 못했다. 그래서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겼고, 이 번역본(70인역)은 이후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초기 기독교인이 함께 읽는 성경이 된다. 번역은 단순한 언어 옮기기가 아니라 신앙을 다른 문화 속에서 설명하는 일이었다.

  • 70인역이라는 이름은 번역자 수에 관한 전승에서 왔다.
  • 번역 과정에서 쓰인 그리스어 용어가 훗날 신학 용어의 바탕이 된다.
  • 알렉산드리아 유대인 공동체는 헬레니즘 학문과 활발히 접촉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헬레니즘 왕국들이 지중해 동부를 나눠 다스렸고, 서쪽에서는 로마가 카르타고와 겨루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최대 판도를 이뤘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선교와 전파

이 세기에 두 전통은 각각 자기 땅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유대교는 경전을 그리스어로 옮겼고, 불교는 왕의 후원으로 전법사를 보냈다. 번역과 파견 — 종교가 국경을 넘는 두 가지 방식이 같은 세기에 나타났다.

이 시대의 사건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70인역) (기원전 280년)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는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썼고 히브리어를 잘 읽지 못했다.

  •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이 자기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제6장 기원전 2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200년~기원전 101년

박해가 만든 항쟁, 항쟁이 만든 왕조

셀레우코스의 종교 탄압에 맞선 마카비 항쟁은 유대교사에서 신앙의 자유를 지킨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결과로 세워진 하스몬 왕조는 제사장직과 왕권을 함께 쥐면서 내부 비판을 받았고, 그 갈등 속에서 여러 종파가 자기 자리를 분명히 했다.

  • 하누카는 성전 정화를 기념하는 절기다.
  • 바리새는 구전 전승과 율법 해석을, 사두개는 성전 제사와 성문 율법을 중시했다.
  • 에세네 계열은 성전 체제를 비판하며 광야 공동체를 이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 다니엘서의 최종 형태가 이 시기 상황과 연결된다는 것이 다수 학설이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로마는 지중해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무너진 뒤 여러 왕조가 섰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인도-그리스 왕국이 있었다. 중국 한나라가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종교는 여전히 직접 만나지 않았다. 다만 이 세기에 지중해–중앙아시아–인도를 잇는 교역로가 활발해지면서, 종교가 상인과 함께 이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이 시대의 사건

안티오코스 4세의 유대교 금지 (기원전 167년)

예루살렘 내부의 헬레니즘 수용파와 반대파의 갈등에 왕권이 개입하면서 상황이 격해졌다.

  • 유대교 예배가 중단되고 저항이 촉발되었다

마카비 항쟁과 성전 정화 (기원전 167~164년)

탄압에 맞서 시골 제사장 가문이 무장 저항을 일으켰다.

  • 성전 예배가 회복되었다
  • 하누카 절기의 기원이 되었다

쿰란 공동체의 형성 (기원전 150년)

하스몬 왕조의 성전 운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광야로 물러났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 독자적 달력과 규율을 지닌 공동체가 유지되었다

제7장 기원전 1세기의 유대교

기원전 100년~기원전 1년

점령 아래서 커지는 기다림

로마의 지배와 헤롯의 통치 아래서 유대 사회는 크게 흔들렸다. 성전은 화려해졌지만 세금과 정치적 억압은 무거웠고,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기를 바라는 종말론적 기대가 여러 형태로 퍼졌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도 하나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집단마다 달랐다.

  • 헤롯 성전은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성소였다.
  • 성전 세력, 율법 해석 학파, 광야 공동체, 무장 저항 세력이 공존했다.
  • 메시아 기대는 왕적·제사장적·예언자적 형태로 다양했다.
  •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제국 곳곳에 살고 있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공화정이 내전을 거쳐 제정으로 바뀌었다. 지중해 전체가 한 정치 질서 아래 묶였고, 도로와 항로가 정비되었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계속 퍼졌고, 스리랑카에서는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기독교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1세기 예수 운동이 놓이게 될 자리 — 로마의 점령, 성전 체제, 여러 갈래의 메시아 기대,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 가 이 세기에 모두 갖춰졌다.

유대교 ↔ 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로마와 인도를 잇는 해상·육상 교역로가 이 무렵 활발해졌다. 두 종교의 직접 접촉을 보여 주는 자료는 없지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은 다음 세기들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이 시대의 사건

폼페이우스의 예루살렘 점령 (기원전 63년)

하스몬 왕조 형제 사이의 왕위 다툼에 로마가 중재자로 끌려 들어왔다.

  • 유대가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 하스몬의 독립이 사실상 끝났다

헤롯의 제2성전 증축 (기원전 20년~63년)

로마의 후원으로 왕이 된 헤롯은 대규모 건축으로 정통성을 보이려 했다.

  • 당대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성소가 되었다

제8장 1세기의 유대교

1년~100년

성전을 잃고 랍비 유대교로 다시 서다

1세기 유대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장 세력, 율법 해석을 중시한 바리새, 광야 공동체, 무장 저항 세력,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가 함께 있었다. 70년 성전이 파괴되면서 제사 중심의 종교 생활이 끝났고, 회당과 율법 연구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 성전 파괴로 제사·순례·제사장 제도가 사실상 중단되었다.
  • 야브네의 학자들이 율법 해석 전통을 이어 유대교를 재편했다.
  • 이 재편 과정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무리와의 거리도 벌어졌다.
  •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유대교 존속의 기반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하나의 정치·교통 질서로 묶었다. 이 ‘로마의 평화’ 아래 도로와 항로, 공용어인 그리스어가 사람과 사상을 빠르게 실어 날랐다. 동쪽 끝에서는 후한과 쿠샨 왕조가 실크로드를 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초기 예수 운동은 유대교 성경, 회당 예배, 절기, 메시아 기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두 종교는 남남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가지다.

유대교 ↔ 기독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예수를 메시아로 볼 것인가, 이방인 신자에게 율법을 요구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었다. 성전 파괴 이후 양쪽 모두 자기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면서 거리가 벌어졌다.

이 시대의 사건

예수의 십자가형 (30년)

로마의 지배 아래 유월절 순례로 붐비던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출신 교사 예수가 성전 뜰에서 소동을 일으킨 뒤 체포되었다.

  • 제자 공동체의 흩어짐과 재결집
  •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초기 공동체의 형성

예루살렘 회의 (49년)

이방인 신자가 늘면서 그들에게 할례와 음식 규정을 요구할 것인지가 공동체의 현안이 되었다.

  • 이방인 신자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유대 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66년~74년)

무거운 세금, 총독의 실정, 종파 간 갈등이 겹쳐 유대 지방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 성전 파괴와 제사 제도의 중단
  • 예루살렘의 파괴와 대규모 인명 손실

야브네의 재편 (70년~132년)

성전이 사라진 뒤 유대교는 제사 없이 신앙을 이어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 회당과 율법 연구가 종교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제9장 2세기의 유대교

101년~200년

율법 해석이 신앙의 중심이 되다

바르 코크바 항쟁의 실패로 유대 지역의 정치적 회복 가능성은 사라졌다. 랍비들은 율법 해석과 교육을 통해 성전 없는 시대의 유대교를 세워 갔고, 그 결과가 다음 세기 초 미쉬나로 정리된다.

  • 예루살렘 출입 금지로 유대교의 중심이 갈릴리와 디아스포라로 옮겨졌다.
  • 구전 율법의 체계적 정리가 진행되었다.
  • 회당이 예배·교육·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인도에서는 쿠샨 왕조가 번성했고, 중국 후한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두 공동체는 이제 서로를 다른 종교로 여기며 논쟁했다. 기독교 변증가들은 유대교 성경을 자기 방식으로 읽었고, 유대교 쪽은 그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사건

바르 코크바 항쟁 (132년~135년)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도 회복의 기대가 남아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정책이 갈등을 촉발했다.

  • 막대한 인명 피해와 파괴
  •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이 금지되고 도시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되었다

제10장 3세기의 유대교

201년~300년

미쉬나가 완성되다

구전으로 이어지던 율법 해석이 미쉬나로 정리되었다. 이 책은 이후 예루살렘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바탕이 되며, 랍비 유대교의 기본 틀을 놓았다.

  • 미쉬나는 주제별로 배열된 율법 해석 모음이다.
  • 바빌로니아의 유대인 학원들이 중심지로 성장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혼란기에 로마는 군인 황제들의 교체, 국경 침입, 경제난을 겪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사산 왕조가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쿠샨이 쇠퇴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박해와 차별

이 시기 두 종교 모두 로마 제국 안에서 취약했지만 처지는 달랐다. 유대교는 오래된 민족 종교로 일정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반면, 기독교는 그런 지위가 없었다.

이 시대의 사건

미쉬나 편집 (200년)

성전이 사라진 뒤 구전으로 이어지던 율법 해석이 흩어질 위험이 있었다.

  • 구전 율법이 문헌으로 고정되었다

제11장 4세기의 유대교

301년~400년

제국이 기독교가 되면서 좁아진 자리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유대인의 법적 지위는 점차 제한되었다. 회당은 유지되었지만 새 회당 건축이나 공직 진출이 어려워졌다. 학문의 중심은 팔레스타인에서 바빌로니아로 옮겨 갔다.

  • 예루살렘 탈무드가 이 시기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 바빌로니아 학원들이 유대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과 대박해를 지나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 수도가 되었고, 395년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가 일어났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유대교 — 박해와 차별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와 소수가 된 유대교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 구도가 이후 유럽사에서 오래 이어진다.

이 시대의 사건

테살로니카 칙령과 국교화 (380년~392년)

니케아 신앙과 다른 계열의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황제가 한쪽을 국가의 신앙으로 정했다.

  • 기독교가 사실상 국교가 되었다
  • 전통 종교의 공적 제사가 금지되었다

제12장 5세기의 유대교

401년~500년

탈무드의 세기

바빌로니아의 학원들에서 미쉬나에 대한 방대한 토론이 정리되어 바빌로니아 탈무드로 묶였다. 이 책은 이후 유대교 학문과 생활의 중심 문헌이 된다.

  • 탈무드는 법과 이야기, 논쟁을 함께 담은 문헌이다.
  • 사산조 페르시아 아래의 유대인 공동체가 학문 중심지였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 이동 속에서 해체되고 여러 왕국이 세워졌다.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존속했다. 인도 굽타 왕조가 전성기를 지나 쇠퇴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유대교 — 박해와 차별

기독교 로마법 아래 유대인의 활동 제한이 이어졌다. 다만 사산조 페르시아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다른 조건에서 학문을 이어 갔다.

제13장 6세기의 유대교

501년~600년

탈무드 시대의 마무리

바빌로니아 탈무드가 대체로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다. 동로마와 서방 게르만 왕국 모두에서 유대인의 법적 권리는 점차 좁아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옛 로마 영토의 일부를 되찾고 법전을 정비했다. 서유럽은 게르만 왕국들의 시대였고, 중국은 589년 수나라로 다시 통일되었다. 일본에 불교가 공식적으로 전해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기독교 ↔ 유대교 — 박해와 차별

동로마 법전은 유대인의 공직·증언·개종 활동을 제한했다. 법으로 지위를 규정하는 방식이 이후 유럽의 모델이 된다.

제14장 7세기의 유대교

601년~700년

새 지배자 아래의 유대인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중동 대부분의 유대인이 무슬림 통치 아래 놓였다. ‘성서의 백성’으로서 지즈야(인두세)를 내고 자기 종교를 유지하는 딤미 제도가 자리 잡았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동로마 아래에서보다 제약이 덜한 경우가 많았다.

  • 638년 이후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가 다시 가능해졌다.
  • 바빌로니아(이라크) 학원들이 계속 유대 학문의 중심이었다.
  • 딤미 제도는 보호와 차별을 동시에 담은 제도다. 한쪽만 말하지 않는다.

같은 시대의 세계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을 때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일어났다. 사산조는 무너졌고 동로마는 시리아·이집트를 잃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열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신학적으로는 유일신 신앙과 율법 중심의 생활에서 닮은 점이 많다.

유대교 ↔ 기독교 — 정치적 협력

638년 이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거주가 다시 허용되면서, 동로마 시기와는 다른 세 종교의 공존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 시대의 사건

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638년)

동로마와 사산조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시리아·팔레스타인이 차례로 무슬림 세력에 넘어갔다.

  • 기독교 주민과 성소의 존속이 인정되었다
  • 유대인의 거주가 다시 허용되었다

제15장 8세기의 유대교

701년~800년

두 세계에 걸쳐 살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 양쪽에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처지는 지역마다 달랐다. 이슬람 통치 지역에서는 상업과 학문에서 활동 폭이 넓은 편이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세웠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왕조가 일어나 800년 대관식으로 이어졌다. 당은 안사의 난으로 흔들렸고, 일본은 나라 시대를 맞았다.

이 시대의 사건

무슬림 세력의 이베리아 진출 (711년)

서고트 왕국 내부의 왕위 다툼으로 방어가 흔들리던 때였다.

  • 이베리아에 이슬람 통치가 시작되었다

제16장 9세기의 유대교

801년~900년

전승의 권위를 묻다

탈무드 전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만을 따르려는 카라이파가 등장하면서, 랍비 유대교는 자기 전통의 근거를 다시 설명해야 했다. 이 논쟁은 유대 사상에 철학적 언어를 끌어들였다.

같은 시대의 세계

카롤루스 제국이 분열하며 서유럽의 윤곽이 잡혔다. 바이킹의 이동이 유럽을 흔들었고, 아바스 왕조는 정치적으로 약해졌지만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당은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대의 사건

카라이파의 대두 (830년)

탈무드 전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성경만을 따르려는 흐름이 세력을 얻었다.

  • 유대교 안에 뚜렷한 두 갈래가 생겼다

제17장 10세기의 유대교

901년~1000년

이베리아의 황금기

무슬림 통치의 이베리아에서 유대인은 궁정 관리·의사·시인·철학자로 활동했다. 히브리어 시문학이 되살아났고 철학과 성경 주석이 발전했다. 이 시기를 이상화하지 않되, 실제로 예외적인 시기였다는 점도 함께 말해야 한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서유럽에서 신성로마제국이 세워지고 봉건 질서가 자리 잡았다. 이슬람 세계는 아바스·파티마·후우마이야로 나뉘었다. 중국에서는 송이 통일을 이루고 인쇄술이 발전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베리아에서 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이 함께 살며 학문과 문학을 주고받았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상호 영향은 뚜렷했다.

이 시대의 사건

코르도바 칼리프국 선포 (929년)

이베리아를 다스리던 우마이야 가문이 바그다드·카이로와 대등함을 내세우려 했다.

  • 코르도바가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이자 학문 중심지가 되었다

제18장 11세기의 유대교

1001년~1100년

십자군이 지나간 자리

제1차 십자군이 출발하면서 라인란트의 유대인 공동체가 습격을 받았다. 성지를 향한 원정이 가는 길에 있는 이웃을 죽이는 일로 시작된 것이다. 이 사건은 유럽 유대인 역사에서 오래 기억되는 상처가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라시가 성경과 탈무드 주석을 남겨 이후 유대교 학습의 표준이 되었다.

  • 1096년 보름스·마인츠·쾰른 등지에서 학살이 일어났다.
  • 일부 주교가 유대인을 보호하려 했으나 막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 라시의 주석은 오늘날까지 유대교 학습의 기본 텍스트다.

같은 시대의 세계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을 장악하고 1071년 만지케르트에서 동로마를 크게 이겼다. 서유럽에서는 교황과 황제가 서임권을 두고 다투었고, 노르만인이 잉글랜드와 남이탈리아를 차지했다. 중국은 송, 인도 북부는 가즈니 왕조의 침입을 겪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십자군 출발 과정에서 라인란트 유대인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종교적 열정이 가장 가까운 소수자에게 먼저 향한 사례다.

이 시대의 사건

라인란트 유대인 학살 (1096년)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하려 모인 무리 가운데 일부가 출발 전 유대인 공동체를 습격했다.

  • 여러 공동체가 사실상 소멸했다

제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3년에 걸친 원정 끝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 예루살렘 왕국 등 십자군 국가가 세워졌다

제19장 12세기의 유대교

1101년~1200년

학문의 절정과 폭력의 확산

마이모니데스는 유대 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철학과 신앙을 잇는 저작을 남겼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십자군 열기와 함께 유대인에 대한 폭력과 헛소문이 퍼졌다.

  • 마이모니데스는 이슬람 세계(안달루시아·이집트)에서 활동했다.
  • ‘의례 살인’ 같은 근거 없는 고발이 이 시기부터 퍼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십자군 국가들이 시리아·팔레스타인에 자리 잡았다가 살라딘에게 밀렸다. 서유럽에서는 도시와 대학이 성장했고,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 운동이 이어졌다. 일본은 무사 정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 시대의 사건

톨레도 번역 학파 (1130년~1200년)

1085년 톨레도가 기독교 왕국에 넘어가면서 아랍어 장서가 그대로 남았다.

  • 아리스토텔레스·의학·수학·천문학 문헌이 라틴 유럽에 들어왔다

하틴 전투와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 (1187년)

십자군 국가들이 내부 분열을 겪는 사이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했다.

  • 예루살렘이 88년 만에 무슬림 통치로 돌아갔다
  • 제3차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요크 유대인 학살 (1190년)

제3차 십자군 준비 열기 속에 잉글랜드 여러 도시에서 유대인 공격이 이어졌다.

  • 요크의 유대인 공동체가 사실상 소멸했다

제20장 13세기의 유대교

1201년~1300년

표식과 추방의 시대가 열리다

제4차 라테란 공의회의 결정으로 유대인은 옷차림으로 구별되어야 했다. 탈무드가 불태워지고 공개 논쟁이 강요되기도 했다. 동시에 신비주의 전통인 카발라가 이 시기에 문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가로질렀고 1258년 바그다드를 함락했다. 서유럽에서는 대학과 탁발수도회가 성장했다. 인도에는 델리 술탄국이, 일본에는 가마쿠라 막부가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복장 규정, 탈무드 소각, 강제 논쟁이 이어졌다. 제도가 차별을 공식화한 시기다.

이 시대의 사건

제4차 라테란 공의회 (1215년)

교황권이 절정에 이른 시기에 교회 전반의 규율을 정비하려 했다.

  • 해마다 고해와 영성체를 하도록 정했다
  • 유대인과 무슬림에게 구별되는 복장을 요구했다

제21장 14세기의 유대교

1301년~1400년

역병의 희생양

흑사병의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헛소문이 퍼져 수많은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동유럽으로 이주했고, 이것이 이후 아슈케나짐 중심지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같은 시대의 세계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유럽을 흔들었다.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했고, 중국에서는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섰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휩쓸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흑사병기 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는 전형적 사례다. 일부 교황과 지역 지도자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널리 퍼졌다.

이 시대의 사건

흑사병과 유대인 학살 (1347년~1351년)

몇 해 사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가량이 사라지는 대유행이 닥쳤다.

  • 수백 곳의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제22장 15세기의 유대교

1401년~1500년

추방

1492년 스페인에서, 1497년 포르투갈에서 유대인이 추방되었다. 세파르디 유대인은 오스만 제국·북아프리카·네덜란드 등으로 흩어졌고, 오스만은 이들을 받아들였다. 개종했으나 의심받는 이들(콘베르소)에 대한 종교재판도 이어졌다.

같은 시대의 세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대국이 되었다.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이 완성되었고, 대항해가 시작되었다. 인쇄술이 유럽에 퍼졌고 르네상스가 무르익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이슬람교 — 정치적 협력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다수를 오스만 제국이 받아들였다. 같은 세기에 한쪽에서는 추방이, 다른 쪽에서는 수용이 일어났다.

이 시대의 사건

그라나다 함락과 유대인 추방령 (1492년)

이베리아 재정복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종교적 단일화 정책이 강화되었다.

  • 이베리아의 이슬람 통치가 끝났다
  • 수만 명의 유대인이 추방되었다
  • 대서양 항해가 시작되었다

제23장 16세기의 유대교

1501년~1600년

게토와 카발라

이탈리아 도시들에 유대인 거주 구역(게토)이 제도화되었다. 한편 팔레스타인 사페드에서는 루리아를 중심으로 한 카발라 사상이 꽃피어 이후 유대 신비주의의 방향을 정했다.

  • 게토는 보호를 명분으로 했지만 실질은 격리였다.
  • 오스만 영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활동 폭이 넓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오스만이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이 정복과 선교를 함께 진행했고, 인도에는 무굴 제국이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가톨릭 — 박해와 차별

게토 제도가 이탈리아에서 확립되었다. 개혁 진영 안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 문헌이 나왔다.

제24장 17세기의 유대교

1601년~1700년

메시아 기대와 그 좌절

샤브타이 츠비를 메시아로 믿는 운동이 유럽과 중동의 유대 공동체를 휩쓸었다가 그의 개종으로 무너졌다. 이 충격은 이후 유대 사상에 오래 영향을 남겼다. 한편 암스테르담 등지에서는 세파르디 공동체가 상업과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0년전쟁과 영국 내전이 유럽을 흔들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오스만은 1683년 빈 포위 실패 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 시대의 사건

샤브타이 츠비 운동 (1665년~1666년)

1648년 동유럽 학살의 참상과 카발라의 종말 기대가 겹쳐 구원에 대한 갈망이 컸다.

  • 대규모 실망과 혼란이 뒤따랐다

제25장 18세기의 유대교

1701년~1800년

해방과 하시디즘

서유럽에서는 시민권을 얻는 해방이 시작되었고, 동유럽에서는 기쁨과 영성을 강조하는 하시디즘이 퍼졌다. 멘델스존은 유대 전통과 계몽 사상을 잇는 길을 모색했다. 근대 유대교의 여러 갈래가 여기서 시작된다.

같은 시대의 세계

계몽주의가 유럽 사상을 바꾸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계몽주의의 관용 논의는 유대인의 시민권 문제를 공론장에 올렸다. 해방은 그러나 ‘시민이 되려면 유대인다움을 얼마나 내려놓아야 하는가’라는 새 질문을 낳았다.

이 시대의 사건

하시디즘의 시작 (1750년)

학문 중심의 엘리트 문화와 메시아 운동의 좌절 뒤에, 가난한 이들이 다가갈 수 있는 신앙이 필요했다.

  • 동유럽 유대 사회의 큰 부분이 이 운동에 참여했다

프랑스 혁명과 탈기독교화 (1789년~1794년)

교회는 프랑스에서 최대의 지주였고 신분제의 한 축이었다.

  • 교회가 국가에서 분리되는 과정이 폭력적으로 시작되었다

제26장 19세기의 유대교

1801년~1900년

개혁·정통·시온주의

해방과 근대화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두고 개혁파, 정통파, 보수파의 갈래가 형성되었다. 동유럽의 박해가 이어지면서 정치적 해법으로 시온주의가 나타났다.

  • 러시아의 포그롬이 대규모 이주를 낳았다.
  • 반유대주의가 인종 이론과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다.

같은 시대의 세계

산업혁명과 제국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묶었다. 민족주의가 퍼졌고, 과학과 역사학이 종교 이해를 흔들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박해와 차별

종교적 반유대주의가 인종 이론과 결합해 근대적 반유대주의로 바뀌었다. 이것이 다음 세기 참극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이 시대의 사건

시카고 세계종교회의 (1893년)

만국박람회의 부대 행사로, 세계의 여러 종교 대표를 한자리에 모으는 시도가 이뤄졌다.

  • 아시아 종교가 서구 대중에게 직접 소개되었다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 (1897년)

러시아의 학살(포그롬)과 서유럽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해방만으로는 안전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을 팔레스타인에 세운다는 목표가 공식화되었다

제27장 20세기의 유대교

1901년~2000년

절멸의 시도와 국가의 수립

홀로코스트는 유럽 유대인 공동체의 삶을 거의 파괴했다. 생존자와 이주자들이 세운 이스라엘은 유대 역사에서 이천 년 만의 국가였고, 동시에 팔레스타인 주민의 실향이라는 또 다른 역사를 낳았다. 신앙의 자리에서는 ‘그때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라는 물음이 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 홀로코스트는 우발적 학살이 아니라 국가가 조직한 절멸 정책이었다.
  •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사의 전환점이자 중동 분쟁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두 측면을 함께 말해야 한다.
  • 홀로코스트 이후 신학이 유대·기독교 양쪽에서 형성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화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후반에는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며 종교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홀로코스트 이후 기독교 여러 교단이 반유대적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관계를 다시 세우려 했다. 1965년 〈우리 시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완결된 것이 아니다.

이 시대의 사건

홀로코스트 (1941년~1945년)

종교적 반유대주의의 오랜 전통 위에 19세기 인종 이론이 결합하면서, 유대인을 인종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정책이 가능해졌다.

  •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고 유럽 유대인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건국과 팔레스타인 실향 (1948년)

19세기 말 시온주의 운동, 영국 위임통치, 홀로코스트 이후의 난민 문제가 겹쳤다.

  • 유대 국가가 수립되었다
  •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고향을 떠났다(나크바)
  • 아랍 국가들에 살던 유대인 다수도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제28장 21세기의 유대교

2001년~2100년

이스라엘과 디아스포라 두 축으로 존재하며, 홀로코스트 기억의 계승과 반유대주의의 재부상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세계화, 대규모 이주,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성 정치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유대교 ↔ 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20세기의 화해 노력이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반유대주의의 재부상은 이 대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이 시대의 사건

감염병 유행과 온라인 예배의 확산 (2020년~2022년)

전 세계적 감염병 유행으로 모임 자체가 제한되었다.

  • 종교 활동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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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대 근동 문헌 자료집(함무라비 법전, 아시리아 연대기 등)
  3. 히브리 성경 본문(전승 자료로 표기)
  4. 히브리 성경 열왕기하·에스라 (전승 자료)
  5. 바빌론 연대기, 키루스 원통 비문 (1차 사료)
  6. 초기 불교 팔리 문헌과 연대 논쟁을 다룬 연구서
  7.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승 자료)
  8. 엘레판티네 파피루스 (1차 사료)
  9.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서, 초기 불교사 개설서
  10. 헬레니즘 시대 개설서
  11. 제2성전기 유대교 연구
  12. 초기 불교 부파 형성에 관한 연구
  13. 아쇼카 칙령 비문 (1차 사료)
  14. 70인역 성립에 관한 연구
  15. 헬레니즘 유대교 연구서
  16. 마카베오서,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전승·후대 서술)
  17. 사해문서 (1차 사료)
  18. 《밀린다왕문경》 (불교 전승 문헌)
  19.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유대 고대사》
  20. 헤롯 성전 관련 고고학 보고
  21. 제2성전기 종말론 연구
  22. 타키투스 《연대기》,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1차·근접 사료)
  23. 신약성서 본문 (종교 전통 문헌이자 1세기 자료)
  24. 초기 기독교와 유대교 분화에 관한 표준 연구서
  25. 카시우스 디오 등 로마 사가의 서술
  26.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27. 초기 한역 불전 연구
  28.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29. 미쉬나 본문
  30. 3세기 로마사 연구
  31. 에우세비우스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32. 니케아 신경 본문
  33. 후기 로마 제국 연구서
  34. 칼케돈 공의회 문서
  35.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36. 바빌로니아 탈무드
  37. 동아시아 불교 번역사 연구
  38. 프로코피우스의 저작
  39. 베네딕도 규칙
  40. 《일본서기》 등 동아시아 사서
  41. 초기 이슬람사 연구서와 사료 비판 연구
  42. 동로마·시리아어 연대기 (외부 시선의 근접 사료)
  43. 현장 《대당서역기》
  44. 아바스 시대 번역 운동 연구
  45.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46. 일본 나라 시대 사료
  47. 《슬라브인의 사도》 전기 자료
  48. 당 회창폐불 관련 사서
  49. 아바스 학문사 연구
  50. 《원초 연대기》(루스 개종 기사)
  51. 이베리아 유대 문학 연구
  52. 송 대장경 인쇄 연구
  53. 십자군 연대기(라틴어·아랍어·히브리어 기록을 함께 볼 것)
  54. 1054년 관련 문서와 최근 연구
  55. 라시 주석, 가잘리 저작
  56. 아랍어·라틴어 십자군 연대기
  57. 마이모니데스 저작
  58. 톨레도 번역 학파 연구
  59. 제4차 십자군 연대기
  60. 제4차 라테란 공의회 문서
  61. 몽골 시대 이슬람사 연구
  62. 흑사병 관련 연대기와 연구
  63. 콘스탄츠 공의회 문서
  64. 이븐 할둔 《역사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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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1492년 추방령 문서
  67. 인쇄술과 종교개혁 연구
  68. 95개 논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 문서 (1차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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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오스만·사파비·무굴사 연구
  71. 베스트팔렌 조약문
  72. 전례 논쟁 관련 문서
  73. 17세기 유대사 연구
  74. 웨슬리 일기
  75. 프랑스 혁명기 종교 정책 자료
  76. 하시디즘 연구
  77. 선교 단체 기록
  78. 파나두라 논쟁 기록
  79. 근대 반유대주의 연구
  80. 〈우리 시대〉(Nostra Aetate) 본문
  81. 바르멘 선언 본문
  82. 홀로코스트 연구와 증언 자료
  83. 20세기 세계 종교 인구 통계
  84.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2007) 본문
  85. 〈인간 형제애〉(2019) 본문
  86. 세계 종교 인구 통계(퓨 리서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