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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 한눈 · 별권
개신교 역사
독일·스위스·잉글랜드에서 오늘까지
검수용 교정본 · 배포 금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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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제1장 16세기의 개신교
- 제2장 17세기의 개신교
- 제3장 18세기의 개신교
- 제4장 19세기의 개신교
- 제5장 20세기의 개신교
- 제6장 21세기의 개신교
이 책이 다루는 것
- 기원과 형성
- 확산
- 내부 분화
- 정치·사회와의 관계
- 현대적 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16세기의 개신교
1501년~1600년
하나가 아닌 여러 갈래
루터파, 개혁파(칼뱅), 재세례파, 잉글랜드 교회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개신교를 하나의 단일한 집단으로 서술하면 안 된다. 성경 번역과 회중 찬송, 모국어 예배가 공통된 특징이었다.
- 오직 성경·오직 은혜·오직 믿음이라는 표어로 요약되곤 한다.
- 재세례파는 국가교회 자체를 거부해 양쪽 모두에게 박해받았다.
- 잉글랜드의 개혁은 정치적 계기에서 출발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합스부르크와 프랑스가 유럽 패권을 다투는 가운데 오스만이 헝가리까지 진출했다. 아메리카에서는 스페인이 정복과 선교를 함께 진행했고, 인도에는 무굴 제국이 섰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개신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의 수와 의미, 교회의 권위 구조가 쟁점이었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이 쟁점들을 두고 공식 대화를 이어 오고 있다.
가톨릭 ↔ 개신교 — 전쟁과 충돌
종교적 차이가 제후들의 정치적 이해와 겹치며 전쟁과 학살로 번졌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신앙 선택권을 제후에게 주는 방식의 타협이었다.
이 시대의 사건
95개 논제 발표 (1517년)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을 위한 면벌부 판매가 독일 지역에서 논란이 되었다.
- 대규모 신학 논쟁이 시작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1555년)
제국 안에서 가톨릭과 루터파 제후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 일시적 평화가 확보되었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1572년)
가톨릭과 위그노(프랑스 개혁파)의 갈등이 왕실 혼례를 계기로 폭발했다.
- 프랑스 종교전쟁이 격화되었다
제2장 17세기의 개신교
1601년~1700년
국가교회와 자유교회
국가와 결합한 개신교회와 국가에서 독립하려는 흐름이 함께 있었다. 아메리카로 건너간 이들은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30년전쟁과 영국 내전이 유럽을 흔들었고, 베스트팔렌 조약이 근대 국가 체제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혁명이 진행되었고, 오스만은 1683년 빈 포위 실패 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학적 화해가 아니라 정치적 공존의 규칙이었다. 진리 문제를 미루고 함께 사는 법을 정한 첫 대규모 시도다.
이 시대의 사건
30년전쟁 (1618년~1648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개혁파(칼뱅)를 포함하지 않았고, 제후들의 종교·정치 이해가 얽혀 있었다.
- 중부 유럽 일부 지역에서 인구가 3분의 1 이상 줄었다
제3장 18세기의 개신교
1701년~1800년
부흥과 선교의 준비
경건주의와 부흥 운동은 개인의 신앙 체험과 실천을 강조했고, 다음 세기 세계 선교 운동의 인적·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같은 시대의 세계
계몽주의가 유럽 사상을 바꾸었고, 미국 독립과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무굴 제국은 쇠퇴했다.
이 시대의 사건
대각성 운동 (1734년~1745년)
형식화된 교회 생활에 대한 불만과 개인적 회심 체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 회심 체험을 강조하는 신앙 형태가 자리 잡았다
웨슬리의 회심과 감리교 운동 (1738년)
국교회 안에서 형식적 신앙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었다.
- 규율 있는 소그룹 중심의 신앙 운동이 확산되었다
제4장 19세기의 개신교
1801년~1900년
선교의 세기
성경 번역과 학교·병원 설립을 통해 선교가 진행되었다. 이 과정은 복음 전파이자 문화 접촉이었고, 때로 식민 권력과 구별되지 않았다.
같은 시대의 세계
산업혁명과 제국주의가 세계를 하나의 체제로 묶었다. 민족주의가 퍼졌고, 과학과 역사학이 종교 이해를 흔들었다.
이 시대의 사건
개신교 세계 선교 운동 (1792년~1900년)
부흥 운동으로 자란 헌신과 유럽의 해상 진출이 겹치면서 선교 단체가 잇따라 세워졌다.
- 기독교가 아시아·아프리카·태평양으로 크게 퍼졌다
성서 역사비평의 확산 (1835년~1900년)
역사학과 문헌학의 방법이 성경 연구에 본격 적용되었다.
- 성경을 역사 문헌으로 읽는 학문 분야가 자리 잡았다
제5장 20세기의 개신교
1901년~2000년
교회 일치 운동, 사회 참여 신학, 오순절 운동, 복음주의 선교 등 여러 갈래가 함께 성장했다.
같은 시대의 세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탈식민화가 세계를 뒤흔들었다. 후반에는 세계화와 대규모 이주가 진행되며 종교 지도가 다시 그려졌다.
다른 종교와의 관계
가톨릭 ↔ 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교회 일치 운동과 신학 대화가 진행되었고, 1999년 칭의론에 관한 공동선언이 나왔다.
제6장 21세기의 개신교
2001년~2100년
오순절·복음주의 계열이 남반구에서 크게 성장했고, 서구에서는 세속화와 함께 재편이 진행 중이다.
같은 시대의 세계
세계화, 대규모 이주, 디지털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다.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성 정치의 중심에 다시 놓였다.
참고문헌
- 95개 논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 문서 (1차 사료)
- 칼뱅 《기독교 강요》
- 오스만·사파비·무굴사 연구
- 베스트팔렌 조약문
- 전례 논쟁 관련 문서
- 17세기 유대사 연구
- 웨슬리 일기
- 프랑스 혁명기 종교 정책 자료
- 하시디즘 연구
- 선교 단체 기록
- 파나두라 논쟁 기록
- 근대 반유대주의 연구
- 〈우리 시대〉(Nostra Aetate) 본문
- 바르멘 선언 본문
- 홀로코스트 연구와 증언 자료
- 20세기 세계 종교 인구 통계
- 〈우리와 당신 사이의 공통된 말〉(2007) 본문
- 〈인간 형제애〉(2019) 본문
- 세계 종교 인구 통계(퓨 리서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