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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 한눈 · 별권
종교 간 관계사
만남과 논쟁, 전쟁과 화해
검수용 교정본 · 배포 금지
같은 시대, 서로 다른 믿음은 어떤 역사를 지나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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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제1장 유대교 ↔ 기독교
- 제2장 유대교 ↔ 이슬람교
- 제3장 기독교 ↔ 이슬람교
- 제4장 가톨릭 ↔ 동방정교회
- 제5장 가톨릭 ↔ 개신교
- 제6장 불교 ↔ 기독교
- 제7장 불교 ↔ 이슬람교
이 책이 다루는 것
- 관계별 통사
- 대표 사건
- 양측의 관점
- 현대의 대화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종교 전통의 주장, 학문적 해석을 구분해 씁니다. 확정되지 않은 연대와 논쟁 중인 내용은 그렇게 밝혀 적었고, 특정 종교의 관점만으로 다른 종교를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제1장 유대교 ↔ 기독교
1세기~현재 · 지중해·유럽·중동·세계
기독교는 유대교 안에서 시작되었다. 성경, 절기, 예배 형식, 메시아 기대를 물려받았고, 1세기 말부터 두 종교로 갈라졌다.
양측의 관점
유대교의 자리에서: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며, 기독교의 성경 해석을 자기 전통의 해석과 다른 것으로 본다. 오랜 박해의 역사가 관계 인식의 바탕에 있다.
기독교의 자리에서: 기독교는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의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고백한다. 20세기 이후 많은 교단이 대체주의적 서술과 반유대적 가르침을 공식 철회했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1세기 말~2세기에 두 공동체의 분리가 진행되었다. | 유럽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기독교는 다수, 유대교는 소수였고 그 힘의 차이가 관계를 규정했다. | 홀로코스트 이후 신학적 재검토와 공식 대화가 제도화되었다. 대화는 진행 중이며 반유대주의의 재부상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
대표 사건
예수의 십자가형 (30년)
로마의 지배 아래 유월절 순례로 붐비던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출신 교사 예수가 성전 뜰에서 소동을 일으킨 뒤 체포되었다.
예루살렘 회의 (49년)
이방인 신자가 늘면서 그들에게 할례와 음식 규정을 요구할 것인지가 공동체의 현안이 되었다.
유대 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66년~73년)
무거운 세금, 총독의 실정, 종파 간 갈등이 겹쳐 유대 지방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라인란트 유대인 학살 (1096년)
제1차 십자군에 참가하려 모인 무리 가운데 일부가 출발 전 유대인 공동체를 습격했다.
홀로코스트 (1941년~1945년)
종교적 반유대주의의 오랜 전통 위에 19세기 인종 이론이 결합하면서, 유대인을 인종적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는 정책이 가능해졌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2년~1965년)
근현대 세계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 쌓여 있었다.
제2장 유대교 ↔ 이슬람교
7세기~현재 · 중동·북아프리카·이베리아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유일신 신앙, 율법 중심의 생활, 형상 사용에 대한 태도에서 닮은 점이 많다.
양측의 관점
유대교의 자리에서: 유대교는 무슬림 통치 아래에서 시기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른 경험을 했다. 이베리아의 황금기와 여러 시기의 차별이 함께 있다.
이슬람교의 자리에서: 이슬람교는 유대인을 이전 계시를 받은 공동체로 보되, 그 계시가 온전히 보존되지 않았다고 본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딤미 제도 아래에서 보호와 차별이 함께 주어졌다. | 중세 대부분의 기간 동안 유대인 인구의 다수가 무슬림 통치 지역에 살았다. | 20세기 중동 분쟁으로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다. 종교적 차이와 정치적 분쟁을 구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
대표 사건
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638년)
동로마와 사산조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시리아·팔레스타인이 차례로 무슬림 세력에 넘어갔다.
제3장 기독교 ↔ 이슬람교
7세기~현재 · 지중해·중동·유럽·세계
두 종교는 유일신 신앙과 예언자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예수의 신성과 계시의 완성을 두고 갈라진다.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어 접촉면이 넓었다.
양측의 관점
기독교의 자리에서: 기독교 쪽에서는 성지 상실과 이슬람 세력의 확장을 위협으로 인식한 시기가 길었다. 20세기 이후 공식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슬람교의 자리에서: 이슬람 쪽에서는 십자군과 식민 지배의 기억이 크다. 예수를 예언자로 존중하는 신학적 자리는 유지된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7~8세기 정복으로 중동 기독교가 소수가 되었다. | 십자군, 재정복, 오스만의 확장, 식민 지배가 이어졌다. 동시에 교역과 학문 교류도 계속되었다. | 〈공통된 말〉(2007), 〈인간 형제애〉(2019) 등 공동 문서가 나왔다. 동시에 이슬람 혐오와 극단주의 폭력이라는 과제가 있다. |
대표 사건
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638년)
동로마와 사산조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시리아·팔레스타인이 차례로 무슬림 세력에 넘어갔다.
클레르몽 교회회의와 원정 호소 (1095년)
만지케르트 패배 후 동로마 황제가 서방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제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1099년)
3년에 걸친 원정 끝에 십자군이 예루살렘에 이르렀다.
제4장 가톨릭 ↔ 동방정교회
4세기~현재 · 유럽·지중해
같은 교회에서 언어·전례·권위 이해가 갈라졌다. 1054년의 상호 파문과 1204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이 결정적이었다.
양측의 관점
가톨릭의 자리에서: 가톨릭은 로마 주교의 보편적 관할권을 신앙의 일부로 본다.
동방정교회의 자리에서: 정교회는 총대주교좌들의 협의 구조와 각 지역 교회의 자립을 강조한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1054년 지도부 사이의 공식 단절. | 1204년 이후 실질적 단절이 굳어졌고, 재결합 시도(1274·1439)는 실패했다. | 1965년 상호 파문 철회, 신학 대화 위원회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 |
대표 사건
동서 교회의 상호 파문 (1054년)
언어(라틴어·그리스어), 전례 관습, 신경의 필리오케 표현, 로마 주교의 권위 범위를 둘러싼 차이가 수백 년에 걸쳐 쌓여 있었다.
제5장 가톨릭 ↔ 개신교
16세기~현재 · 유럽·세계
구원 이해,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 교회의 권위 구조를 두고 갈라졌다. 정치적 이해가 겹치며 전쟁으로 번졌다.
양측의 관점
가톨릭의 자리에서: 가톨릭은 교회의 가르치는 직무와 전통을 성경과 함께 권위로 인정한다.
개신교의 자리에서: 개신교는 성경을 최종 권위로 삼고 교회의 판단을 그 아래 둔다. 개신교 내부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16세기 유럽의 종교적·정치적 분열. | 30년전쟁과 베스트팔렌 조약을 거쳐 공존의 규칙이 마련되었다. | 1999년 칭의론에 관한 공동선언 등 신학 대화가 진행되었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은 공동 기념 행사로 치러졌다. |
대표 사건
95개 논제 발표 (1517년)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자금을 위한 면벌부 판매가 독일 지역에서 논란이 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 (1545년~1563년)
개신교의 확산과 오래된 내부 개혁 요구가 함께 압력이 되었다.
아우크스부르크 화의 (1555년)
제국 안에서 가톨릭과 루터파 제후의 무력 충돌이 이어졌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학살 (1572년)
가톨릭과 위그노(프랑스 개혁파)의 갈등이 왕실 혼례를 계기로 폭발했다.
제6장 불교 ↔ 기독교
16세기~현재 · 동아시아·동남아시아·서구
두 종교의 본격적 만남은 16세기 예수회 선교로 시작되었고, 19세기 개신교 선교와 서구 학문의 아시아 진출로 확대되었다.
양측의 관점
불교의 자리에서: 불교는 선교에 대응하며 스스로를 근대적 언어로 재설명했고, 20세기 이후 서구에 명상 전통을 전했다.
기독교의 자리에서: 기독교는 초기에 불교를 경쟁 종교로 보았으나, 20세기 이후 대화와 영성 교류의 상대로 대하는 흐름이 커졌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16~17세기 선교 접촉과 전례 논쟁. | 19세기 공개 논쟁과 불교 근대화, 20세기 명상 전통의 서구 확산. | 수도자 간 대화와 명상 교류가 제도화되었다. |
제7장 불교 ↔ 이슬람교
8세기~현재 · 중앙아시아·인도·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두 종교가 접촉했다. 무역과 문화 교류가 있었고, 정치적 충돌도 있었다.
양측의 관점
불교의 자리에서: 불교는 인도 본토에서 여러 요인이 겹쳐 쇠퇴했다. 외부 침입만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다.
이슬람교의 자리에서: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 확산되며 기존 종교 지형을 바꿨다. 지역마다 공존의 형태도 달랐다.
결과와 오늘
| 가까운 결과 | 긴 시간의 결과 | 현대 |
|---|---|---|
| 8~13세기 중앙아시아·북인도의 종교 지형 변화. | 동남아시아에서는 두 종교가 지역별로 나뉘어 자리 잡았다. | 미얀마·태국 남부 등에서 종교 정체성이 민족 갈등과 겹치는 문제가 있다. 어느 종교든 다수가 되면 같은 위험을 안는다. |
참고문헌
- 〈우리 시대〉
- 각 교단의 유대교 관련 공식 문서
- 유대교–기독교 관계사 연구
- 딤미 제도 연구
- 이베리아 유대사 연구
- 중동 현대사
- 십자군 연구
- 〈공통된 말〉
- 〈인간 형제애〉
- 1054년 문서
- 1965년 공동 선언
- 동서 교회 관계사 연구
- 트리엔트 교령
- 칭의론 공동선언
- 교회 일치 운동 문서
- 예수회 선교 기록
- 파나두라 논쟁 기록
- 종교 간 대화 문헌
- 중앙아시아 종교사 연구
- 인도 불교 쇠퇴 논쟁
- 동남아시아 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