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7년
하틴 전투와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
십자군 국가들이 내부 분열을 겪는 사이 살라딘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했다.
이슬람교가톨릭유대교하틴·예루살렘전쟁아이유브 왕조예루살렘 왕국
원인
- 십자군 국가의 내분
- 휴전 파기와 대상 습격
- 살라딘의 세력 통합
전개 과정
물 없는 고지에서 십자군 주력이 궤멸했고, 몇 달 뒤 예루살렘이 항복 조건을 협상해 넘어갔다.
직접적 결과
- 예루살렘이 88년 만에 무슬림 통치로 돌아갔다
- 제3차 십자군이 소집되었다
장기적 영향
- 1099년의 학살과 대비되어 자주 함께 이야기된다
-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가 다시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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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이슬람교
성지 회복이자 절제 있는 처리로 기억한다.
가톨릭
충격적 패배였고 새 원정의 명분이 되었다.
유대교
십자군 시기 금지되었던 거주가 다시 가능해졌다.
역사학계
살라딘의 관대함은 당대 유럽 문헌도 인정했다. 다만 몸값을 내지 못한 이들은 노예가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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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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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하틴·예루살렘1187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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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틴·예루살렘 — 하틴 전투와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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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이븐 알아시르
- 라틴어 연대기
- 십자군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