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만남 · 논쟁 · 교류 · 전쟁 · 화해

종교 관계사

종교사는 각 종교의 연대기를 따로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만나고 부딪히고 배운 자리를 관계별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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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별로 보기

유대교기독교1세기~현재

기독교는 유대교 안에서 시작되었다. 성경, 절기, 예배 형식, 메시아 기대를 물려받았고, 1세기 말부터 두 종교로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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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이슬람교7세기~현재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유일신 신앙, 율법 중심의 생활, 형상 사용에 대한 태도에서 닮은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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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이슬람교7세기~현재

두 종교는 유일신 신앙과 예언자 전통을 공유하면서도 예수의 신성과 계시의 완성을 두고 갈라진다. 지리적으로 맞닿아 있어 접촉면이 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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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동방정교회4세기~현재

같은 교회에서 언어·전례·권위 이해가 갈라졌다. 1054년의 상호 파문과 1204년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약탈이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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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개신교16세기~현재

구원 이해,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 교회의 권위 구조를 두고 갈라졌다. 정치적 이해가 겹치며 전쟁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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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기독교16세기~현재

두 종교의 본격적 만남은 16세기 예수회 선교로 시작되었고, 19세기 개신교 선교와 서구 학문의 아시아 진출로 확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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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슬람교8세기~현재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두 종교가 접촉했다. 무역과 문화 교류가 있었고, 정치적 충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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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여덟 가지 유형

세기별 서술에 붙는 표시입니다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4건)
교리적 차이와 논쟁(7건)
문화·학문·예술 교류(12건)
선교와 전파(4건)
정치적 협력(3건)
박해와 차별(10건)
전쟁과 충돌(11건)
화해와 종교 간 대화(8건)

같은 두 종교 사이에도 시대에 따라 유형이 달라집니다. 한 시기의 갈등을 그 관계 전체로 일반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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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별 관계 서술

기원전 20~7세기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 시기에 두 전통은 서로를 알지 못했다. 이스라엘 종교 전통은 고대 근동의 제국들 사이에서, 인도 종교문화는 베다 전통 안에서 각각 형성되고 있었다. 만남이 없
  • 유대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기독교는 아직 없다. 다만 이 시기에 만들어진 성경과 예언자 전통, 절기와 언약 개념이 뒤에 기독교가 그대로 물려받는 유산이 된다.
기원전 6세기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이 시기에 서로 만나지 않았다. 다만 기원전 6세기는 근동과 인도 양쪽에서 기존 종교 질서를 다시 묻는 움직임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에서 함께 놓고 볼
기원전 5세기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전통은 여전히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기에 양쪽 모두 ‘스승이 떠난 뒤 가르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 유대교는 글로 적힌 토라를
기원전 4세기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으로 지중해와 인도가 하나의 교역·문화 통로로 이어졌다. 두 종교의 직접 만남을 보여 주는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이후 세기의 접촉을 가능하게
기원전 3세기
  • 유대불교 · 선교와 전파 이 세기에 두 전통은 각각 자기 땅 밖으로 나가는 방법을 찾았다. 유대교는 경전을 그리스어로 옮겼고, 불교는 왕의 후원으로 전법사를 보냈다. 번역과 파견 — 종교
기원전 2세기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종교는 여전히 직접 만나지 않았다. 다만 이 세기에 지중해–중앙아시아–인도를 잇는 교역로가 활발해지면서, 종교가 상인과 함께 이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기원전 1세기
  • 유대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기독교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1세기 예수 운동이 놓이게 될 자리 — 로마의 점령, 성전 체제, 여러 갈래의 메시아 기대,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
  • 유대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로마와 인도를 잇는 해상·육상 교역로가 이 무렵 활발해졌다. 두 종교의 직접 접촉을 보여 주는 자료는 없지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은 다음
1세기
  • 유대기독교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초기 예수 운동은 유대교 성경, 회당 예배, 절기, 메시아 기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두 종교는 남남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가지다.
  • 유대기독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예수를 메시아로 볼 것인가, 이방인 신자에게 율법을 요구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었다. 성전 파괴 이후 양쪽 모두 자기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면서 거리가 벌어졌다.
  • 기독교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두 종교는 이 시기에 만나지 않았다. 다만 로마와 한나라를 잇는 교역로가 이어져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2세기
  • 유대기독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두 공동체는 이제 서로를 다른 종교로 여기며 논쟁했다. 기독교 변증가들은 유대교 성경을 자기 방식으로 읽었고, 유대교 쪽은 그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 기독교불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직접 접촉의 증거는 없다. 다만 두 종교 모두 이 세기에 ‘번역’이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는 점은 비교해 볼 만하다.
3세기
  • 유대기독교 · 박해와 차별 이 시기 두 종교 모두 로마 제국 안에서 취약했지만 처지는 달랐다. 유대교는 오래된 민족 종교로 일정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반면, 기독교는 그런 지위가 없었다.
4세기
  • 기독교유대 · 박해와 차별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와 소수가 된 유대교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 구도가 이후 유럽사에서 오래 이어진다.
5세기
  • 기독교유대 · 박해와 차별 기독교 로마법 아래 유대인의 활동 제한이 이어졌다. 다만 사산조 페르시아 지역의 유대인 공동체는 다른 조건에서 학문을 이어 갔다.
6세기
  • 기독교유대 · 박해와 차별 동로마 법전은 유대인의 공직·증언·개종 활동을 제한했다. 법으로 지위를 규정하는 방식이 이후 유럽의 모델이 된다.
7세기
  • 유대이슬람 · 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신학적으로는 유일신 신앙과 율법 중심의 생활에서 닮은 점이 많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동로마와의 전쟁으로 시리아·이집트·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지역이 이슬람 통치 아래 들어갔다. 군사적 충돌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가 계속 존재하는 공존 구조도 만들어졌
  • 유대기독교 · 정치적 협력 638년 이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거주가 다시 허용되면서, 동로마 시기와는 다른 세 종교의 공존 구도가 만들어졌다.
8세기
  • 기독교이슬람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베리아와 지중해에서 두 세계는 전쟁만 한 것이 아니라 교역하고 배웠다. 아바스의 번역 운동은 훗날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711년 이베리아 진출과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두 세계의 경계가 정해지는 과정이었다.
9세기
  • 가톨릭정교회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슬라브 선교의 관할권과 신경의 표현(필리오케)을 둘러싸고 동서 교회가 부딪쳤다. 1054년 이전에 이미 갈등이 쌓이고 있었다.
  • 불교기독교 · 박해와 차별 845년 당의 폐불은 불교만이 아니라 경교·마니교 등 외래 종교 전반을 겨냥했다.
10세기
  • 유대이슬람 · 문화·학문·예술 교류 이베리아에서 유대인·무슬림·기독교인이 함께 살며 학문과 문학을 주고받았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상호 영향은 뚜렷했다.
  • 가톨릭정교회 · 선교와 전파 동유럽 각 민족이 어느 쪽 교회를 통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가를 두고 두 교회가 경쟁했다. 폴란드는 서방, 루스는 동방을 택했다.
11세기
  • 가톨릭정교회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신경의 필리오케 표현, 무교병 사용, 로마 주교의 권위 범위가 쟁점이었다. 언어가 달라 서로의 문헌을 읽지 못한 것도 오해를 키웠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제1차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주민을 학살했다. 이 기억은 이후 두 세계의 관계에 오래 그림자를 드리웠다.
  • 유대가톨릭 · 박해와 차별 십자군 출발 과정에서 라인란트 유대인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종교적 열정이 가장 가까운 소수자에게 먼저 향한 사례다.
12세기
  • 기독교이슬람 · 문화·학문·예술 교류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아랍어 문헌이 라틴어로 옮겨졌다. 유대인 학자들이 중간 언어를 다루며 이 작업에 참여했다. 전쟁과 번역이 같은 세기에 나란히 일어났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제2차·제3차 십자군이 이어졌다. 1187년 살라딘의 예루살렘 접수는 1099년과 대비되어 자주 언급된다.
  • 불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북인도의 정치 변동 속에서 불교 대사원이 파괴되었다. 다만 인도 불교의 쇠퇴는 이전부터 진행된 여러 요인이 겹친 결과라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13세기
  • 가톨릭정교회 · 전쟁과 충돌 1204년 약탈은 두 교회 관계에서 1054년보다 더 결정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2001년 교황이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 유대가톨릭 · 박해와 차별 복장 규정, 탈무드 소각, 강제 논쟁이 이어졌다. 제도가 차별을 공식화한 시기다.
  • 이슬람불교 · 정치적 협력 몽골 제국 아래에서 여러 종교가 한 정치 질서 안에 놓였다. 지배층은 시기와 지역에 따라 불교·이슬람·기독교를 각각 후원하기도 했다.
14세기
  • 유대가톨릭 · 박해와 차별 흑사병기 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는 전형적 사례다. 일부 교황과 지역 지도자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널리 퍼졌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오스만의 발칸 진출로 남동유럽에서 두 종교의 접촉면이 넓어졌다.
15세기
  • 유대이슬람 · 정치적 협력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대인 다수를 오스만 제국이 받아들였다. 같은 세기에 한쪽에서는 추방이, 다른 쪽에서는 수용이 일어났다.
  • 가톨릭정교회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1439년 피렌체 공의회의 재결합 선언은 정치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고, 동방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되었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동쪽에서는 오스만이 기독교 제국을 무너뜨렸고, 서쪽에서는 기독교 왕국이 무슬림 왕국을 무너뜨렸다. 같은 세기에 반대 방향의 두 일이 일어났다.
16세기
  • 가톨릭개신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의 수와 의미, 교회의 권위 구조가 쟁점이었다. 오늘날 여러 교단이 이 쟁점들을 두고 공식 대화를 이어 오고
  • 가톨릭개신교 · 전쟁과 충돌 종교적 차이가 제후들의 정치적 이해와 겹치며 전쟁과 학살로 번졌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는 신앙 선택권을 제후에게 주는 방식의 타협이었다.
  • 유대가톨릭 · 박해와 차별 게토 제도가 이탈리아에서 확립되었다. 개혁 진영 안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적대적 문헌이 나왔다.
  • 기독교불교 · 선교와 전파 예수회 선교사가 일본과 중국에 도착하면서 두 종교가 본격적으로 만났다. 초기에는 상호 관심과 오해가 함께 있었다.
17세기
  • 가톨릭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베스트팔렌 조약은 신학적 화해가 아니라 정치적 공존의 규칙이었다. 진리 문제를 미루고 함께 사는 법을 정한 첫 대규모 시도다.
  • 기독교불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중국 선교에서 조상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전례 논쟁이 벌어졌다. 문화와 신앙의 경계를 묻는 문제였다.
18세기
  • 유대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계몽주의의 관용 논의는 유대인의 시민권 문제를 공론장에 올렸다. 해방은 그러나 ‘시민이 되려면 유대인다움을 얼마나 내려놓아야 하는가’라는 새 질문을 낳았다.
19세기
  • 기독교불교 · 교리적 차이와 논쟁 스리랑카의 공개 논쟁과 일본의 배불 정책 이후 재정비 과정에서 두 종교가 본격적으로 마주했다. 불교의 근대적 자기 이해는 이 만남 속에서 형성된 면이 있다.
  • 기독교이슬람 · 선교와 전파 선교와 식민 지배가 겹치면서, 이슬람 세계에서 기독교는 종교이자 서구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 유대기독교 · 박해와 차별 종교적 반유대주의가 인종 이론과 결합해 근대적 반유대주의로 바뀌었다. 이것이 다음 세기 참극의 사상적 배경이 된다.
20세기
  • 유대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홀로코스트 이후 기독교 여러 교단이 반유대적 가르침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관계를 다시 세우려 했다. 1965년 〈우리 시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화는 여전히 진행
  • 가톨릭정교회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1965년 상호 파문 철회로 900년 만에 공식 관계가 회복되었다. 다만 신학적·관할권 문제는 남아 있다.
  • 가톨릭개신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교회 일치 운동과 신학 대화가 진행되었고, 1999년 칭의론에 관한 공동선언이 나왔다.
  • 기독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탈식민 과정과 중동 분쟁 속에서 두 종교의 관계가 정치와 깊이 얽혔다. 종교 갈등으로만 설명하면 원인을 놓친다.
  • 불교기독교 · 문화·학문·예술 교류 명상과 영성 분야에서 두 전통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수도자들 사이의 대화가 제도화되었다.
21세기
  • 기독교이슬람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공통된 말〉(2007)과 〈인간 형제애〉(2019) 같은 공동 문서가 나왔다. 대화는 진행 중이며 성과와 한계를 함께 봐야 한다.
  • 불교이슬람 · 전쟁과 충돌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종교 정체성이 민족 갈등과 겹치며 폭력으로 이어진 사례가 있다. 어느 종교든 다수 종교가 되면 같은 위험을 안는다는 점을 함께 봐야 한다.
  • 유대기독교 · 화해와 종교 간 대화 20세기의 화해 노력이 제도로 자리 잡았지만, 반유대주의의 재부상은 이 대화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