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22년
요시야의 종교개혁
아시리아의 힘이 약해진 틈에 남유다 요시야 왕이 종교와 정치를 함께 정비했다. 성전을 수리하다 율법책을 발견했다고 성경은 전한다.
유대교예루살렘종교 개혁남유다 왕국
원인
- 아시리아 쇠퇴로 생긴 정치적 여유
- 지방 성소의 난립
- 예언자 계열의 요구
전개 과정
지방 성소를 없애고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모았으며, 발견된 율법책에 따라 유월절을 지켰다고 전한다.
직접적 결과
- 예배 장소가 예루살렘으로 집중되었다
장기적 영향
- ‘한 곳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형태가 자리 잡았다
- 발견된 율법책이 신명기 계열 문헌과 연결된다는 것이 학계의 유력한 설명이다
1
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유대교
언약으로 돌아간 모범적 개혁으로 기억된다.
역사학계
율법책 발견 기사가 개혁을 정당화하기 위한 서술인지, 실제 발견인지가 논쟁거리다.
2
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신명기 계열 문헌의 성립 시기와 이 개혁의 관계가 구약학의 오랜 쟁점이다.
6
일어난 곳
예루살렘기원전 622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예루살렘 — 요시야의 종교개혁
7
출처와 추가 읽기
- 열왕기하 22~23장
- 역대하 34~35장
- 신명기 사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