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7년~1638년
시마바라 봉기와 일본의 기독교 금지
선교로 신자가 늘었으나 막부는 기독교를 통치의 위협으로 보고 탄압을 강화했다.
기독교가톨릭시마바라봉기·금교에도 막부
원인
- 과중한 세금과 기근
- 기독교 신자에 대한 탄압
- 지역 영주의 실정
전개 과정
농민과 신자들이 봉기했으나 진압되었다.
직접적 결과
- 기독교 금지가 철저해지고 쇄국 정책이 굳어졌다
장기적 영향
- 신자들이 250년 가까이 숨어 신앙을 이어 갔다(가쿠레 기리시탄)
- 19세기에 그 후손들이 다시 나타나 세계를 놀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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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순교와 잠복의 역사로 기억한다. 관련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역사학계
봉기의 성격을 종교 반란으로만 볼 것인지 농민 봉기로 볼 것인지 논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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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시마바라1637년~1638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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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바라 — 시마바라 봉기와 일본의 기독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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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에도 막부 기록
- 일본 기독교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