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5년~1563년
트리엔트 공의회
개신교의 확산과 오래된 내부 개혁 요구가 함께 압력이 되었다.
가톨릭트리엔트공의회
전개 과정
세 차례에 걸친 회기 동안 교리와 규율을 정리했다.
직접적 결과
- 성경과 전통의 관계, 성사, 칭의에 관한 가톨릭의 입장을 정리했다
- 신학교 제도를 도입했다
장기적 영향
- 이후 400년 가톨릭교회의 형태를 결정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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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교리와 규율을 정리하고 신학교 제도를 도입한 자기 개혁으로 본다. 이 결정이 이후 사백 년 교회의 형태를 정했다.
개신교
개신교 대표가 사실상 참여하지 못한 회의였고, 결정 상당수가 개신교의 주장을 명시적으로 배척하는 형태였다고 본다.
동방정교회
동방 교회는 이 회의를 보편 공의회로 인정하지 않는다.
역사학계
개신교에 대한 대응이자 그 이전부터 있던 내부 개혁 요구의 결실이라는 양면으로 읽는다. 어느 한쪽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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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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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6
일어난 곳
트리엔트1545년~1563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트리엔트 — 트리엔트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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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트리엔트 공의회 교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