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년~135년
바르 코크바 항쟁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도 회복의 기대가 남아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정책이 갈등을 촉발했다.
유대교기독교유대 지방항쟁로마 제국
원인
- 예루살렘을 로마식 도시로 재건하려는 계획
- 할례 금지로 해석된 조치
- 성전 회복에 대한 기대
전개 과정
시몬 바르 코크바가 이끄는 세력이 한때 넓은 지역을 장악했으나 3년 만에 진압되었다.
직접적 결과
- 막대한 인명 피해와 파괴
- 유대인의 예루살렘 출입이 금지되고 도시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되었다
장기적 영향
- 유대 지역의 정치적 회복 가능성이 사라지고 학문과 율법 해석이 중심이 되었다
- 메시아 선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예수 추종 무리와의 거리가 더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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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유대교
랍비 전통 안에서도 이 항쟁과 메시아 선언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다.
기독교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들은 이 봉기에 함께하지 않았고, 그것이 분리를 굳혔다.
역사학계
사료가 적어 규모와 경과의 세부는 추정에 의존한다. 최근에는 문서 발견으로 재구성이 진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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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봉기의 직접적 계기(도시 재건인가 할례 금지인가)가 사료마다 다르게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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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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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
실제 유물·유적132~135년
바르 코크바 항쟁기의 화폐
봉기 세력이 로마 화폐 위에 다시 새겨 만든 것. 성전 회복의 기대가 담겨 있다.
여러 소장처 · http://en.wikipedia.org/wiki/User:IsraelXKV8R Tallenna tiedosto – Wikimedia Commons · CC BY-SA 3.0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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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유대 지방132년~135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유대 지방 — 바르 코크바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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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카시우스 디오
- 바르 코크바 문서(무라바앗·나할 헤베르)
- 로마 유대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