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2세기
두 공동체가 서로를 남으로 보기 시작하고, 각자 경계를 그린다.
성전은 없었다. 유대인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봉기했고, 그 실패 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이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스스로를 유대교와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지를 두고 자기들끼리도 다투었다.
세계사 배경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다. 인도에서는 쿠샨 왕조가 번성했고, 중국 후한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 2세기 초 로마 제국이 최대 판도에 이르렀다.
- 132~135년 바르 코크바 항쟁과 그 진압.
-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이 불교를 후원했다고 전한다.
- 그리스 철학과 종교 사상이 뒤섞인 여러 사조가 제국에 퍼졌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율법 해석이 신앙의 중심이 되다
바르 코크바 항쟁의 실패로 유대 지역의 정치적 회복 가능성은 사라졌다. 랍비들은 율법 해석과 교육을 통해 성전 없는 시대의 유대교를 세워 갔고, 그 결과가 다음 세기 초 미쉬나로 정리된다.
- 예루살렘 출입 금지로 유대교의 중심이 갈릴리와 디아스포라로 옮겨졌다.
- 구전 율법의 체계적 정리가 진행되었다.
- 회당이 예배·교육·공동체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기독교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가
여러 갈래의 가르침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배제할지 정해야 했다. 정경 목록, 신앙 규범, 감독의 계승이라는 세 가지 장치가 이 과정에서 자리 잡았다. 동시에 변증가들은 로마 사회를 향해 기독교가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 마르키온과 여러 영지주의 계열에 대한 논쟁이 정경 논의를 앞당겼다.
- 박해는 여전히 국지적이었지만 순교 기록이 공동체의 기억이 되었다.
- 그리스 철학의 개념이 신학 언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불교
한문으로 옮겨지기 시작한 경전
중앙아시아 출신 승려들이 중국에 와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번역은 낯선 개념을 중국의 말로 바꾸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도가 용어를 빌려 쓰기도 했다.
- 안세고·지루가참 등이 초기 한역 작업을 이끌었다.
- 간다라 불상 양식이 정착했다.
초기 기독교
감독을 중심으로 한 지역 교회
각 도시의 감독이 공동체의 가르침과 예배를 책임지는 형태가 자리 잡았다. 로마·알렉산드리아·안티오키아 같은 큰 도시의 교회가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갖게 되었지만, 아직 하나의 중앙 조직은 없었다.
초기 기독교 역사 전체 보기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공동체는 이제 서로를 다른 종교로 여기며 논쟁했다. 기독교 변증가들은 유대교 성경을 자기 방식으로 읽었고, 유대교 쪽은 그 해석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대교 쪽에서는 성경 해석의 권위가 랍비 전통에 있다고 보았다.
기독교 쪽에서는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향한다고 읽었다.
직접 접촉의 증거는 없다. 다만 두 종교 모두 이 세기에 ‘번역’이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는 점은 비교해 볼 만하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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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기 세력이 로마 화폐 위에 다시 새겨 만든 것. 성전 회복의 기대가 담겨 있다.

형상을 쓰지 않는다는 통념과 달리, 이 시기 회당에 성경 장면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한눈에 보는 연대표
- 132~135년유대교
바르 코크바 항쟁. 진압 후 예루살렘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되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된다.
- 2세기 중반유대교
미쉬나로 이어질 구전 율법의 정리 작업이 진행된다.
- 2세기기독교
유스티누스 등 변증가들이 그리스 철학의 언어로 기독교를 설명한다.
- 140년대기독교
마르키온이 유대교 성경을 배제한 목록을 내세우고 배척된다. 정경 논의가 촉발된다.
- 2세기 후반기독교
이레네우스가 ‘신앙의 규범’과 사도적 계승을 내세워 여러 가르침을 정리한다.
- 2세기불교
카니슈카 왕의 후원 아래 간다라 불교가 번성하고 대승 사상이 확산된다.
- 148년경~불교
안세고 등 역경승이 중국에서 불경을 한문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핵심 정리
- 바르 코크바 항쟁의 실패로 유대교는 정치적 회복이 아닌 학문과 교육의 길을 택했다.
- 기독교는 정경·신앙 규범·감독 계승이라는 장치로 내부 경계를 정리했다.
- 두 종교의 분리는 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과정이었다.
- 불교는 중국어라는 완전히 다른 언어권으로 건너가는 번역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