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1347년~1351년

흑사병과 유대인 학살

몇 해 사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가량이 사라지는 대유행이 닥쳤다.

관점 검토
유대교가톨릭유럽 전역재난·학살

원인

  • 원인을 알 수 없는 재난 앞의 공포
  •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헛소문
  • 채무 관계와 지역 권력의 방조

전개 과정

스트라스부르·바젤·마인츠 등 여러 도시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고문 끝의 자백을 근거로 학살당했다.

직접적 결과

  • 수백 곳의 공동체가 파괴되었다

장기적 영향

  • 생존자들이 동유럽(폴란드·리투아니아)으로 옮겨 가면서 아슈케나짐의 중심이 이동했다
  • 재난기에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는 전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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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

유대교

중세 유럽에서 겪은 가장 큰 규모의 폭력 가운데 하나로 기억한다.

가톨릭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이런 고발이 근거 없다고 두 차례 공표했으나 학살을 막지 못했다.

역사학계

유대인 공동체도 똑같이 병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이 고발의 근거 없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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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유럽 전역1347년~1351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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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전역흑사병과 유대인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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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1. 당대 연대기
  2. 교황 칙서
  3. 흑사병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