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14세기
역병이 유럽을 휩쓸고, 교회는 교황이 둘·셋인 시대를 맞는다.
1347년부터 몇 해 사이 유럽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이유를 찾았고, 그 화살이 유대인에게 향했다. 같은 시기 교회에는 교황이 둘, 한때는 셋이 있었다. 권위가 흔들릴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 세기가 보여 준다.
세계사 배경
흑사병과 백년전쟁이 유럽을 흔들었다.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했고, 중국에서는 원이 무너지고 명이 섰다. 티무르가 중앙아시아를 휩쓸었다.
- 1309~1377년 교황청의 아비뇽 시기.
- 1347~1351년 흑사병 대유행.
- 1378~1417년 서방 교회의 대분열(교황이 둘 이상).
- 1368년 명 건국, 오스만의 발칸 진출.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역병의 희생양
흑사병의 원인을 모르는 상황에서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헛소문이 퍼져 수많은 공동체가 학살당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동유럽으로 이주했고, 이것이 이후 아슈케나짐 중심지의 이동으로 이어진다.
유대교 역사 전체 보기 →기독교
권위가 흔들리다
교황이 둘 이상 존재하는 상황은 교회의 권위 자체에 대한 물음을 낳았다. 공의회가 교황보다 위에 있다는 주장(공의회주의)이 힘을 얻었고, 성경을 각 나라 말로 읽자는 요구도 커졌다.
기독교 역사 전체 보기 →이슬람교
오스만의 부상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하며 동유럽 종교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문에서는 이븐 할둔이 문명의 흥망을 설명하는 독창적 역사 이론을 내놓았다.
이슬람교 역사 전체 보기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흑사병기 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소수자가 희생양이 되는 전형적 사례다. 일부 교황과 지역 지도자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널리 퍼졌다.
오스만의 발칸 진출로 남동유럽에서 두 종교의 접촉면이 넓어졌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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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이 로마를 떠나 머문 곳. 요새처럼 지어진 모습이 당시 상황을 말해 준다.

생전 초상이 아니라 후대에 그려진 것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자료입니다. 당시의 실제 모습을 담은 기록이 아닙니다.
한눈에 보는 연대표
- 1309~1377년가톨릭
교황청이 아비뇽에 머문다.
- 1347~1351년
흑사병이 유럽을 휩쓴다.
- 1348~1349년유대교
역병의 책임을 뒤집어쓴 유대인 공동체가 유럽 여러 도시에서 학살당한다.
- 1378년가톨릭
서방 교회의 대분열이 시작된다.
- 1380년대가톨릭
위클리프가 성경의 영어 번역과 교회 비판을 이끈다.
- 14세기이슬람교
이븐 할둔이 《역사서설》을 저술한다.
- 14세기 말불교
총카파가 티베트에서 개혁 운동을 시작한다(겔룩파의 뿌리).
핵심 정리
- 재난은 종종 소수자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 교황이 둘 이상인 상황은 개혁 요구와 공의회주의를 불러왔다.
- 성경을 각 나라 말로 읽자는 요구는 16세기보다 훨씬 앞서 나타났다.
- 오스만의 부상은 다음 세기 동유럽의 종교 지형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