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년
칼케돈 공의회
에페소 이후에도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을 설명하는 방식을 두고 대립이 이어졌다.
기독교가톨릭동방정교회칼케돈(카디쾨이)공의회
전개 과정
황제가 소집한 회의에서 두 본성이 혼합되지도 분리되지도 않는다는 정의문을 채택했다.
직접적 결과
- 칼케돈 정의가 채택되었다
장기적 영향
- 이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교회들이 오리엔트 정교회(콥트·시리아·아르메니아·에티오피아 등)로 이어진다
- 그 교회들은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 20세기 이후 대화에서 서로의 신앙이 실은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했다는 공동 선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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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레오 1세의 서한이 회의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방정교회
네 번째 보편 공의회로 받아들인다.
역사학계
분열에는 신학만이 아니라 언어·지역·제국 정치가 함께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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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분열에는 신학만이 아니라 언어·지역·제국 정치가 함께 작용했다. 같은 회의의 28조를 두고 동방과 서방의 기억이 갈린다. 오리엔트 정교회를 「단성론」이라 부르는 것은 당사자들이 거부하는 이름이며, 그들은 스스로를 「합성론(미아피시스)」이라 설명한다. 1970~80년대와 1994년의 공동 선언에서 표현의 차이였다는 데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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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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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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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칼케돈(카디쾨이)451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칼케돈(카디쾨이) — 칼케돈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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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칼케돈 공의회 문서
- 레오 1세 서한
- 그리스도론 논쟁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