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년
칼케돈 공의회
에페소 이후에도 그리스도 안의 두 본성을 설명하는 방식을 두고 대립이 이어졌다.
기독교가톨릭동방정교회칼케돈(카디쾨이)공의회
전개 과정
황제가 소집한 회의에서 두 본성이 혼합되지도 분리되지도 않는다는 정의문을 채택했다.
직접적 결과
- 칼케돈 정의가 채택되었다
장기적 영향
- 이 정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교회들이 오리엔트 정교회(콥트·시리아·아르메니아·에티오피아 등)로 이어진다
- 그 교회들은 오늘날까지 존재한다. 사라진 것이 아니다
- 20세기 이후 대화에서 서로의 신앙이 실은 같은 것을 다른 말로 표현했다는 공동 선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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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레오 1세의 서한이 회의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방정교회
네 번째 보편 공의회로 받아들인다.
역사학계
분열에는 신학만이 아니라 언어·지역·제국 정치가 함께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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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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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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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칼케돈(카디쾨이)451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칼케돈(카디쾨이) — 칼케돈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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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칼케돈 공의회 문서
- 레오 1세 서한
- 그리스도론 논쟁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