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9년
코르도바 칼리프국 선포
이베리아를 다스리던 우마이야 가문이 바그다드·카이로와 대등함을 내세우려 했다.
이슬람교유대교기독교코르도바정치·문화후우마이야
전개 과정
스스로 칼리프를 칭하고 궁정과 학문을 크게 후원했다.
직접적 결과
- 코르도바가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이자 학문 중심지가 되었다
장기적 영향
- 유대인 학자·관리·시인이 활약하는 이른바 황금기가 열렸다
- 이 시기의 학문이 뒤에 톨레도 번역 학파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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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이슬람교
알안달루스 문명의 절정으로 기억한다.
유대교
히브리어 시문학과 철학이 되살아난 시기로 평가한다.
기독교
모사라베라 불린 기독교인 공동체가 세금을 내며 존속했다.
역사학계
‘세 종교의 공존’은 평등이 아니라 위계 아래의 공존이었다. 이상화하지 않되 실제 성취는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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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코르도바929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코르도바 — 코르도바 칼리프국 선포
7
출처와 추가 읽기
- 아랍어 연대기
- 알안달루스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