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30년

예수의 십자가형

로마의 지배 아래 유월절 순례로 붐비던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출신 교사 예수가 성전 뜰에서 소동을 일으킨 뒤 체포되었다.

관점 검토
기독교유대교예루살렘처형로마 제국(유대 속주)

원인

  • 성전 체제와의 충돌
  • 절기 기간 로마 당국의 치안 우려
  • 메시아 기대가 정치적 불안으로 읽힐 수 있었던 상황

전개 과정

예수는 유대 지도층에게 넘겨졌다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인도되어 십자가형을 선고받았다. 십자가형은 로마가 반란자와 노예에게 쓰던 처형 방식이다.

직접적 결과

  • 제자 공동체의 흩어짐과 재결집
  •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초기 공동체의 형성

장기적 영향

  • 이 사건의 의미를 두고 형성된 신앙 고백이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
  • 후대에 이 사건의 책임을 유대인 전체에 돌리는 서술이 반유대주의의 근거로 오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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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

기독교

기독교는 이 죽음과 뒤이은 부활 고백을 구원의 중심 사건으로 믿는다. (종교 전통의 주장)

유대교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며, 이 사건을 로마 지배기의 여러 처형 가운데 하나로 본다.

이슬람교

7세기 이후 이슬람 전통은 예수를 예언자로 존중하되, 쿠란에 따라 그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이 시대에는 아직 이슬람교가 없었다. 후대 전통의 서술이다.)

역사학계

역사학계는 예수가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형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매우 높은 확실성으로 인정한다. 다만 근거로 드는 사료를 그대로 받으면 안 된다 — 타키투스 《연대기》 15권의 언급은 대체로 진본으로 보지만,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18권의 이른바 「플라비우스 증언」은 후대 기독교인의 가필이 섞였다는 것이 정설이다(핵심만 진본으로 보는 견해가 다수). 같은 책 20권의 야고보 관련 언급이 사료로서 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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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처형 연도(30년 또는 33년), 재판 절차, 유대 지도층의 관여 정도가 학계의 주요 논쟁점이다. 사료 문제로는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증언」의 가필 범위가 오래된 쟁점이다. 어느 서술도 후대의 집단 책임론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학계와 주요 교단의 공식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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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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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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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예루살렘30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예루살렘예수의 십자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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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1. 타키투스 《연대기》 15권
  2.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
  3. 신약 복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