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1세기
유대교 안에서 시작된 한 운동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지고, 성전은 무너진다.
예루살렘 성전 뜰은 순례자로 붐볐다. 로마 총독은 절기마다 병력을 늘렸고, 사람들은 언제 하나님이 개입하실지 이야기했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한 무리의 운동이 이 시대의 기다림 한가운데를 지나갔다. 그리고 70년, 성전이 불탔다. 그 재 위에서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로 다른 길로 갈라서기 시작한다.
세계사 배경
로마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하나의 정치·교통 질서로 묶었다. 이 ‘로마의 평화’ 아래 도로와 항로, 공용어인 그리스어가 사람과 사상을 빠르게 실어 날랐다. 동쪽 끝에서는 후한과 쿠샨 왕조가 실크로드를 이었다.
- 아우구스투스 이후 로마 제정이 안정기에 들어섰다.
- 그리스어(코이네)가 동지중해의 공용어였고, 라틴어는 서방의 행정 언어였다.
- 66~73년 유대 전쟁, 70년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
-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폼페이가 묻혔다.
- 중국 후한과 인도 쿠샨 왕조가 실크로드 교역을 활성화했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성전을 잃고 랍비 유대교로 다시 서다
1세기 유대교는 하나가 아니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장 세력, 율법 해석을 중시한 바리새, 광야 공동체, 무장 저항 세력,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가 함께 있었다. 70년 성전이 파괴되면서 제사 중심의 종교 생활이 끝났고, 회당과 율법 연구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 성전 파괴로 제사·순례·제사장 제도가 사실상 중단되었다.
- 야브네의 학자들이 율법 해석 전통을 이어 유대교를 재편했다.
- 이 재편 과정에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무리와의 거리도 벌어졌다.
-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유대교 존속의 기반이 되었다.
기독교
유대교 안의 운동에서 제국의 종교 공동체로
예수를 따르는 무리는 처음에 유대교 안의 한 운동이었다. 그들은 회당에서 예배하고 성전에 올라갔으며 유대교 성경을 읽었다. 그러나 이방인 신자가 늘고 그들에게 할례와 음식 규정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면서, 이 운동은 유대교와 다른 경계를 갖게 되었다. 1세기 말이 되면 두 공동체는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갈라지기 시작한다.
- 예루살렘·안디옥·에페소·로마 등 도시 공동체가 그물처럼 이어졌다.
- 바울의 서신은 신약성서에서 가장 이른 문헌층에 속한다.
- 이방인 선교의 조건을 정한 예루살렘 회의가 분기점이 되었다.
- 박해는 이 시기 제국 전체의 정책이 아니라 국지적·산발적이었다.
불교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쿠샨 왕조의 후원 아래 간다라·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번성했고, 상인과 승려를 따라 중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불상을 만드는 관습이 이 무렵 자리 잡았고, 대승 경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중국 전래 시점은 전승(67년 백마사)과 학계 추정이 다르다.
- 간다라·마투라에서 불상 조각 양식이 발전했다.
- 대승 계열 경전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초기 기독교
아직 교파가 없던 교회
이 시기 교회를 가톨릭·정교회·개신교로 나눠 부르는 것은 시대착오다. 지역마다 장로와 감독이 공동체를 이끌었고, 예배는 유대교 회당 예배와 공동 식사에서 형태를 얻었다. 후대 전통과의 연속성은 따로 설명해야 할 문제이지, 이 시대의 사실이 아니다.
- 감독·장로·집사 같은 직분이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 정경(신약 27권) 목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 공동체 사이의 편지 왕래가 통일성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초기 예수 운동은 유대교 성경, 회당 예배, 절기, 메시아 기대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두 종교는 남남이 아니라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가지다.
유대교 전통에서 이 운동은 여러 유대교 갈래 가운데 하나로 시작되었다가 경계를 넘어간 것으로 이해된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예수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약속이 성취되었다고 고백한다.
예수를 메시아로 볼 것인가, 이방인 신자에게 율법을 요구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었다. 성전 파괴 이후 양쪽 모두 자기 정체성을 다시 정의하면서 거리가 벌어졌다.
두 종교는 이 시기에 만나지 않았다. 다만 로마와 한나라를 잇는 교역로가 이어져 있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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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4년경기독교학문적 해석
예수의 출생 시기로 학계가 추정하는 무렵(헤롯 대왕 사망 직전).
- 30년경 또는 33년기독교유대교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형을 당한다.
- 30년대기독교
예루살렘의 초기 공동체가 형성되고 유대교 회당을 무대로 활동한다.
- 40년대~60년대기독교
바울의 선교 여행과 서신 활동.
- 49년경기독교유대교
예루살렘 회의 — 이방인 신자에게 유대교 관습을 요구할 것인가를 다룬다.
- 64년기독교
로마 대화재 후 네로가 그리스도인을 처벌했다고 타키투스가 전한다.
- 66~73년유대교
유대 전쟁. 70년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고 73년 마사다가 함락된다.
- 70년 이후유대교
야브네(얌니아)를 중심으로 랍비 전통이 유대교를 재편한다.
- 70~100년경기독교학문적 해석
마르코·마태오·루카·요한 복음서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는다.
- 1세기 후반불교학문적 해석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한다.
핵심 정리
- 기독교는 유대교 밖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유대교 안에서 시작되었다.
- 이방인 신자에게 율법을 요구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두 종교를 가른 큰 갈림길이었다.
- 70년 성전 파괴는 유대교에는 랍비 유대교로의 재편을, 기독교에는 독자적 정체성 형성을 앞당겼다.
- 1세기 박해는 제국 차원의 조직적 정책이 아니라 국지적이고 산발적이었다.
- 불교는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세 종교는 아직 서로 만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