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년
에페소 공의회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이’라 부를 수 있는가를 두고 알렉산드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충돌했다.
기독교동방정교회가톨릭에페소공의회
원인
- 그리스도 안의 신성과 인성을 설명하는 방식의 차이
- 두 총대주교좌의 주도권 다툼
전개 과정
회의 진행 자체가 파행을 겪었고, 네스토리우스가 파면되었다.
직접적 결과
- ‘하나님을 낳은 이’ 호칭이 승인되었다
장기적 영향
-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교회가 동방(아시리아) 교회로 이어졌다
- 그 교회는 페르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와 중국까지 선교를 넓혔다
1
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기독교
그리스도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교회를 실제로 나눈 첫 사례다.
역사학계
네스토리우스가 실제로 무엇을 주장했는지는 20세기 문헌 발견 이후 재평가되고 있다.
2
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네스토리우스주의’라는 이름이 그의 실제 입장과 얼마나 맞는지가 논쟁된다.
3
관련 인물
6
일어난 곳
에페소431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에페소 — 에페소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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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공의회 문서
- 《헤라클레이데스의 서》
- 그리스도론 논쟁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