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9년
피렌체 공의회의 재결합 시도
오스만의 압박을 받던 동로마가 서방의 군사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했다.
가톨릭동방정교회피렌체공의회
원인
- 동로마의 군사적 위기
- 필리오케·연옥·교황 수위권 등 오랜 쟁점
전개 과정
긴 논쟁 끝에 합의문에 서명했으나, 동방 대표 일부는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직접적 결과
- 형식상 재결합이 선언되었다
장기적 영향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성직자와 신자 다수가 이를 거부해 무산되었다
- 기대했던 서방의 군사 지원도 오지 않았다
- ‘라틴의 모자보다 튀르크의 터번이 낫다’는 말이 당대의 정서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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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재결합의 정당한 절차였다고 보았다.
동방정교회
정치적 압박 아래 이뤄진 합의여서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사학계
위에서 맺은 합의가 아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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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피렌체1439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피렌체 — 피렌체 공의회의 재결합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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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피렌체 공의회 문서
- 동서 교회 관계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