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1874년
일본의 신불분리와 폐불훼석
새 정부가 천황 중심의 국가 신도를 세우려 하면서 불교와 신도를 분리하려 했다.
불교일본정책·탄압메이지 정부
원인
- 국가 신도 확립 정책
- 오랫동안 섞여 있던 신불습합의 해체
- 불교의 특권에 대한 반발
전개 과정
사찰과 불상이 파괴되고 승려가 환속했으며, 사찰의 토지와 특권이 사라졌다.
직접적 결과
- 일본 불교가 제도적 기반을 크게 잃었다
장기적 영향
- 불교계가 스스로를 근대적 종교로 재정의하는 계기가 되었다
- 교육과 학문, 사회 사업에 참여하며 새 자리를 찾았다
- 일부는 뒤에 국가 정책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 책임은 전후에 논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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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불교
큰 타격이자 근대적 자기 갱신의 출발점으로 이해된다.
역사학계
‘폐불훼석’의 실제 규모는 지역차가 컸다는 연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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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일본1868년~1874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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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 일본의 신불분리와 폐불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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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메이지 정부 법령
- 일본 근대 불교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