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6년~787년
성상 파괴 논쟁
성상 공경이 우상숭배인가를 두고 황제와 수도원 세력이 부딪쳤다.
동방정교회기독교콘스탄티노폴리스교리 논쟁동로마 제국
원인
- 형상 사용에 대한 신학적 이견
- 황제권과 수도원의 힘겨루기
- 이슬람의 형상 금지와의 관계라는 학문적 논점
전개 과정
황제의 명령으로 성상이 제거되고 옹호자가 박해받았으며,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가 공경을 인정했다.
직접적 결과
- 성상 공경이 신학적으로 정당화되었다
장기적 영향
- 정교회 전례에서 이콘이 중심 자리를 굳혔다
- 843년에 최종적으로 회복되어 ‘정교회의 승리’로 기념된다
- 형상을 대하는 태도는 뒤에 종교개혁기에 다시 쟁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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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동방정교회
성육신을 근거로 형상을 정당화한 신학이 확립되었다.
이슬람교
형상을 쓰지 않는 전통과 대비되어 자주 함께 논의된다.
역사학계
이슬람의 영향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가설이다. 제국 내부의 정치로 설명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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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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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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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콘스탄티노폴리스726년~787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콘스탄티노폴리스 — 성상 파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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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제2차 니케아 공의회 문서
- 다마스쿠스의 요한
- 비잔틴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