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8세기
이슬람 세계가 학문의 중심이 되고, 기독교 세계는 그림 문제로 다툰다.
750년 바그다드로 중심이 옮겨 가면서 이슬람 세계는 정복의 시대에서 학문의 시대로 넘어갔다. 같은 시기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는 성상을 놓고 황제와 수도사들이 부딪쳤고, 서방에서는 프랑크 왕국과 로마 교회가 손을 잡았다. 각자의 세계가 자기 모양을 갖춰 가는 세기다.
세계사 배경
우마이야 왕조가 무너지고 아바스 왕조가 바그다드를 세웠다. 서유럽에서는 카롤루스 왕조가 일어나 800년 대관식으로 이어졌다. 당은 안사의 난으로 흔들렸고, 일본은 나라 시대를 맞았다.
- 711년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했다.
-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 750년 아바스 왕조 성립, 762년 바그다드 건설.
- 800년 카롤루스가 로마에서 황제로 대관했다.
- 755~763년 안사의 난으로 당이 흔들렸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두 세계에 걸쳐 살다
이슬람 세계와 기독교 세계 양쪽에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고, 처지는 지역마다 달랐다. 이슬람 통치 지역에서는 상업과 학문에서 활동 폭이 넓은 편이었다.
유대교 역사 전체 보기 →기독교
성상 논쟁과 프랑크 동맹
성상을 공경하는 것이 우상숭배인가를 두고 동방 교회가 크게 다투었다. 이 논쟁은 신학 문제이면서 황제권과 수도원의 힘겨루기이기도 했다. 서방에서는 교황과 프랑크 왕국이 손잡으며 새로운 정치 질서가 만들어졌다.
-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가 성상 공경을 인정했다.
- 성상 논쟁은 이슬람의 형상 금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가 있다(학문적 해석).
- 800년 대관식은 동로마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었다.
이슬람교
정복에서 학문으로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세우고 그리스·페르시아·인도의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 운동은 이후 유럽이 고대 학문을 되찾는 통로가 된다. 이베리아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이 자리 잡았다.
- 번역 운동으로 의학·수학·천문학·철학이 발전했다.
- 이슬람 법학(피크흐)의 주요 학파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 하디스 수집과 검증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베리아와 지중해에서 두 세계는 전쟁만 한 것이 아니라 교역하고 배웠다. 아바스의 번역 운동은 훗날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711년 이베리아 진출과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두 세계의 경계가 정해지는 과정이었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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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이슬람 문명의 상징. 오늘날은 성당으로 쓰인다.

동방교회가 당나라에 들어와 활동했음을 알려 주는 비석. 845년 폐불 때 함께 금지된다.
한눈에 보는 연대표
- 711년이슬람교기독교
무슬림 세력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간다.
- 726년경~기독교동방정교회
동로마에서 성상 파괴 논쟁이 시작된다.
- 750년이슬람교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를 무너뜨린다.
- 752년불교
일본 도다이지 대불이 완성된다.
- 787년기독교
제2차 니케아 공의회가 성상 공경을 인정한다.
- 792~794년불교종교 전통의 주장
티베트 삼예사에서 인도계와 중국계 불교의 논쟁이 있었다고 전한다.
- 800년가톨릭
카롤루스가 로마에서 황제로 대관한다.
- 8세기이슬람교
바그다드에서 그리스·인도 학문의 번역 운동이 시작된다.
핵심 정리
- 아바스 왕조의 번역 운동은 세계 학문사에서 손꼽히는 사건이다.
- 성상 논쟁은 신학·정치·문화가 얽힌 문제였다.
- 교황과 프랑크의 동맹은 서유럽의 정치·종교 질서를 새로 짰다.
- 이슬람 법학과 하디스 학문이 이 시기에 틀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