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638년

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동로마와 사산조의 오랜 전쟁으로 지친 시리아·팔레스타인이 차례로 무슬림 세력에 넘어갔다.

관점 검토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예루살렘정복정통 칼리프국동로마 제국

전개 과정

포위 끝에 도시가 항복 조건을 협상해 넘어갔다고 전한다.

직접적 결과

  • 기독교 주민과 성소의 존속이 인정되었다
  • 유대인의 거주가 다시 허용되었다

장기적 영향

  • 691년 바위 돔이 세워지며 예루살렘이 이슬람에게도 성지가 되었다
  • 세 종교의 성지가 한 도시에 겹치는 오늘날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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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

이슬람교

항복 조건을 지킨 관대한 접수로 기억한다.

기독교

성지 관리권의 상실로 서술되며, 훗날 십자군의 명분과 연결된다.

유대교

동로마 시기의 거주 금지가 풀린 계기로 기억된다.

역사학계

항복 협정문으로 전해지는 문서의 원형은 후대의 편집을 거쳤다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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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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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
푸른 타일과 금빛 돔으로 덮인 팔각형 건물
실제 유물·유적691년
바위 돔

무슬림 통치가 시작된 뒤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세 종교의 성지가 겹치는 자리를 상징한다.

예루살렘 성전 산 · Godot13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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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예루살렘638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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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루살렘예루살렘의 무슬림 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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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1. 아랍어·시리아어 연대기
  2. 예루살렘 고고학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