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601년~700년

7세기

아라비아에서 이슬람교가 시작되어 한 세기 만에 중동의 종교 지형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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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여는 한 장면

610년 무렵 메카의 한 상인이 동굴에서 계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몇 사람이 따랐고, 도시의 지도층은 그를 배척했다. 622년 그는 야스리브로 옮겨 갔고, 그곳에서 신앙 공동체가 곧 정치 공동체가 되었다. 그로부터 백 년이 못 되어 대서양에서 인더스강까지가 하나의 종교·정치 세계로 묶였다. 이 세기는 유대교·기독교가 살던 땅의 지도가 다시 그려진 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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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배경

동로마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을 때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일어났다. 사산조는 무너졌고 동로마는 시리아·이집트를 잃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나라가 전성기를 열었다.

  • 602~628년 동로마–사산조 대전쟁으로 두 제국이 소모되었다.
  • 618년 당나라가 세워져 국제적 제국을 이루었다.
  • 636년 야르무크 전투, 651년 사산조 멸망.
  • 이슬람 세력이 시리아·이집트·이란·북아프리카로 확장했다.
  • 티베트에 통일 왕국이 서고 불교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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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

유대교

새 지배자 아래의 유대인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중동 대부분의 유대인이 무슬림 통치 아래 놓였다. ‘성서의 백성’으로서 지즈야(인두세)를 내고 자기 종교를 유지하는 딤미 제도가 자리 잡았다. 완전한 평등은 아니었지만, 동로마 아래에서보다 제약이 덜한 경우가 많았다.

  • 638년 이후 유대인의 예루살렘 거주가 다시 가능해졌다.
  • 바빌로니아(이라크) 학원들이 계속 유대 학문의 중심이었다.
  • 딤미 제도는 보호와 차별을 동시에 담은 제도다. 한쪽만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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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중동 기독교가 소수가 되기 시작하다

시리아·이집트·북아프리카의 오래된 기독교 지역이 무슬림 통치 아래 들어갔다. 교회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점차 소수 종교가 되었다. 한편 서방에서는 잉글랜드 선교가 진행되었고, 동방교회는 중앙아시아를 지나 중국까지 이르렀다.

  • 콥트·시리아 교회 등은 오히려 동로마의 교리 압박에서 벗어난 면도 있었다.
  • 635년 동방교회가 당의 장안에 이르러 경교로 알려졌다.
  • 잉글랜드와 게르만 지역 선교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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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형성 중

서방 라틴 교회가 잉글랜드·프랑크 지역 선교로 기반을 넓혔다. 로마 주교의 지도력이 서방에서 점점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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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정교회

형성 중

동로마 제국은 시리아·이집트를 잃고 소아시아와 발칸 중심의 제국으로 축소되었다. 교회도 그 판도 안에서 재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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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한 세대 만에 제국이 되다

무함마드의 활동으로 시작된 신앙 공동체는 그의 사후 급속히 확장했다. 유일신 신앙, 예언자 전통, 성서의 백성에 대한 인식 등에서 유대교·기독교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두 종교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가까움과 논쟁을 함께 안고 있었다. 지도자 계승 문제는 수니·시아 전통이 갈라지는 뿌리가 되었다.

  • 622년 히즈라가 이슬람력의 기점이다.
  • 쿠란은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를 모은 것으로 신앙된다.
  • 656~661년 내전과 680년 카르발라 사건이 수니·시아 분기의 배경이다.
  • 정복은 대체로 개종 강요가 아니라 세금과 지배 체제의 변화로 진행되었다. 개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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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현장의 여행과 티베트 전래

현장은 17년에 걸쳐 인도를 다녀와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고, 그 여행 기록은 인도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티베트에는 이 세기에 불교가 전해져 이후 독자적 전통으로 발전한다.

  • 《대당서역기》는 7세기 중앙아시아·인도를 알려 주는 1차 사료다.
  •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 이 세기다.
  • 당의 국제적 개방성 속에서 여러 종교가 장안에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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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 아직 형성되지 않음
16세기 종교개혁 과정에서 여러 갈래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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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유대교이슬람교공통 기원과 공유 전통

이슬람교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고 유대인을 ‘성서의 백성’으로 규정했다. 신학적으로는 유일신 신앙과 율법 중심의 생활에서 닮은 점이 많다.

유대교의 자리에서

유대교는 이슬람교를 우상숭배가 아닌 유일신 종교로 보는 견해가 후대 랍비 문헌에 나타난다.

이슬람교의 자리에서

이슬람교는 유대인을 이전 계시를 받은 공동체로 보되, 그 계시가 온전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본다.

기독교이슬람교전쟁과 충돌

동로마와의 전쟁으로 시리아·이집트·북아프리카의 기독교 지역이 이슬람 통치 아래 들어갔다. 군사적 충돌과 함께, 기독교 공동체가 계속 존재하는 공존 구조도 만들어졌다.

기독교의 자리에서

동로마 쪽 기록은 이를 재앙으로 서술한다.

이슬람교의 자리에서

이슬람 쪽 기록은 정당한 확장으로 서술한다.

유대교기독교정치적 협력

638년 이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거주가 다시 허용되면서, 동로마 시기와는 다른 세 종교의 공존 구도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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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자료

눌러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푸른 타일과 금빛 돔으로 덮인 팔각형 건물
실제 유물·유적691년
바위 돔

무슬림 통치가 시작된 뒤 예루살렘에 세워졌다. 세 종교의 성지가 겹치는 자리를 상징한다.

예루살렘 성전 산 · Godot13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가죽에 아랍어가 쓰인 두 장의 낡은 사본
실제 유물·유적7세기로 측정
버밍엄 쿠란 사본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이른 쿠란 사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버밍엄 대학교 · Anonymous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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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는 연대표

  1. 610년경이슬람교종교 전통의 주장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2. 622년이슬람교

    히즈라 — 무함마드와 신자들이 메디나로 이주한다. 이슬람력의 원년이다.

  3. 630년이슬람교

    메카가 무슬림 세력에 들어온다.

  4. 632년이슬람교

    무함마드가 사망하고 칼리프 시대가 시작된다.

  5. 636년이슬람교기독교

    야르무크 전투로 동로마가 시리아를 잃는다.

  6. 638년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

    예루살렘이 무슬림 세력에 넘어간다.

  7. 650년경이슬람교종교 전통의 주장

    쿠란 본문이 표준화되었다고 전한다.

  8. 656~661년이슬람교

    제1차 내전(피트나). 지도자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진다.

  9. 661년이슬람교

    우마이야 왕조가 다마스쿠스에 세워진다.

  10. 680년이슬람교

    카르발라 사건. 후사인이 살해되며 시아 전통의 기억에 결정적 사건이 된다.

  11. 691년이슬람교

    예루살렘에 바위 돔이 세워진다.

  12. 629~645년불교

    현장이 인도를 다녀와 경전을 가지고 돌아온다.

  13. 635년기독교

    동방교회(경교) 선교사가 당의 수도 장안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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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정리

  • 이슬람교는 7세기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어 한 세기 만에 중동·북아프리카·이란을 아우르는 세계로 퍼졌다.
  • 622년 히즈라가 이슬람력의 기점이며, 신앙 공동체가 정치 공동체가 된 전환점이다.
  • 정복은 대체로 지배 체제의 교체였고, 주민의 개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 딤미 제도는 유대인·기독교인에게 보호와 차별을 동시에 주었다. 한쪽만 강조하지 않는다.
  • 지도자 계승을 둘러싼 갈등이 수니·시아 전통이 갈라지는 뿌리가 되었다.
  • 같은 세기에 현장이 인도를 다녀왔고 티베트에 불교가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