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66년~74년

유대 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무거운 세금, 총독의 실정, 종파 간 갈등이 겹쳐 유대 지방에서 봉기가 일어났다.

초안 작성
유대교기독교예루살렘 및 유대 지방전쟁로마 제국

원인

  • 로마 통치에 대한 불만
  • 내부 세력 다툼
  • 종말론적 기대

전개 과정

66년 봉기가 시작되어 70년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성전을 불태웠다. 마사다 함락으로 전쟁이 끝났다.

직접적 결과

  • 성전 파괴와 제사 제도의 중단
  • 예루살렘의 파괴와 대규모 인명 손실

장기적 영향

  • 회당과 율법 연구 중심의 랍비 유대교가 자리 잡았다
  • 기독교 공동체가 유대교와 다른 길을 걷는 속도가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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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

유대교

성전을 잃은 재앙이자, 성전 없는 신앙을 세워 낸 전환점으로 기억한다.

기독교

초기 기독교 문헌은 이 사건을 신학적으로 해석했으나, 그 해석이 유대인에 대한 정죄로 쓰여서는 안 된다.

역사학계

요세푸스의 기록이 주요 사료지만 그의 처지(로마 측에 항복한 유대 장군)를 감안해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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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마사다 함락 연도는 73년과 74년이 맞선다. 총독 플라비우스 실바의 부임 시기를 근거로 74년으로 보는 견해가 1990년대 이후 힘을 얻었다. 어느 한쪽을 확정으로 적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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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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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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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
일곱 갈래 촛대를 메고 가는 행렬을 새긴 부조
실제 유물·유적81년경 건립 · 70년의 사건을 새김
티투스 개선문의 부조

70년 함락 뒤 성전 기물을 옮기는 장면. 사건 11년 뒤 티투스가 죽은 다음 세워진 개선문이므로, 당대에 가까운 자료이되 현장 기록은 아니다. 승리자 쪽이 남긴 것이다.

로마 · Anthony M. from Rome, Italy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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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예루살렘 및 유대 지방66년~74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예루살렘 및 유대 지방유대 전쟁과 예루살렘 성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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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1.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티투스 개선문 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