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년
마니교의 등장
조로아스터교·기독교·불교의 요소가 함께 흐르던 이란과 메소포타미아가 무대였다.
기독교사산조 페르시아종교의 시작
전개 과정
마니가 자신을 예언자 계보의 마지막으로 내세우며 가르침을 폈고, 여러 언어로 전파되었다.
직접적 결과
- 로마에서 중앙아시아까지 퍼진 국제적 종교가 되었다
장기적 영향
- 여러 지역에서 박해를 받으며 결국 소멸했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한때 몸담았던 것으로 유명하며, 기독교 신학의 논쟁 상대가 되었다
- ‘마니교적’이라는 말이 선악 이분법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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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기독교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했다.
역사학계
20세기 이후 투르판·이집트에서 발견된 문헌으로 이 종교의 자기 서술을 직접 읽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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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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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6
일어난 곳
사산조 페르시아240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사산조 페르시아 — 마니교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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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콥트어 마니교 문헌
- 투르판 출토 문서
- 마니교 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