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3세기
제국이 흔들리는 동안 신학이 깊어지고, 박해가 제국 전체로 확대된다.
3세기 로마는 황제가 자주 바뀌고 국경이 무너지는 위기의 세기였다. 불안한 제국은 신들의 노여움을 걱정했고,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이 표적이 되었다. 같은 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성경을 철학의 언어로 읽는 깊은 신학이 자라났다.
세계사 배경
3세기의 위기라 불리는 혼란기에 로마는 군인 황제들의 교체, 국경 침입, 경제난을 겪었다. 페르시아에서는 사산 왕조가 일어났고, 인도에서는 쿠샨이 쇠퇴했다.
- 군인 황제 시대의 정치 불안과 화폐 가치 하락.
- 224년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세워졌다.
- 3세기 중반 마니교가 페르시아에서 시작되어 동서로 퍼졌다.
- 중국은 삼국시대의 분열기였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미쉬나가 완성되다
구전으로 이어지던 율법 해석이 미쉬나로 정리되었다. 이 책은 이후 예루살렘 탈무드와 바빌로니아 탈무드의 바탕이 되며, 랍비 유대교의 기본 틀을 놓았다.
- 미쉬나는 주제별로 배열된 율법 해석 모음이다.
- 바빌로니아의 유대인 학원들이 중심지로 성장했다.
기독교
박해와 신학, 두 가지 시험
제국 차원의 박해가 처음으로 조직적으로 시행되었다. 동시에 오리게네스 같은 학자들이 성경을 여러 층위로 읽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박해 뒤 배교자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는 교회의 성격을 묻는 논쟁이 되었다.
- 데키우스·발레리아누스 박해는 제국 정책 차원의 박해였다.
- 배교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교회론을 발전시켰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성경 해석 방식이 갈렸다.
불교
중국 땅에 뿌리내리기
분열기 중국에서 불교는 외래 종교로서 자리를 찾아갔다. 도가 사상의 용어를 빌려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격의)이 쓰였고, 왕실과 귀족의 후원이 늘었다.
불교 역사 전체 보기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이 시기 두 종교 모두 로마 제국 안에서 취약했지만 처지는 달랐다. 유대교는 오래된 민족 종교로 일정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반면, 기독교는 그런 지위가 없었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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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년경유대교
유다 하나시가 미쉬나를 편집한다.
- 3세기 전반기독교
오리게네스가 알렉산드리아·카이사레아에서 성경 주석과 신학 저술을 남긴다.
- 250년기독교
데키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제국 전체 규모의 박해가 일어난다.
- 257~260년기독교
발레리아누스 박해.
- 3세기기독교
박해 때 신앙을 버린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두고 교회가 논쟁한다.
- 3세기불교
중국에서 한역 경전이 늘고 승단이 자리를 잡는다.
핵심 정리
- 미쉬나 편집으로 랍비 유대교의 뼈대가 완성되었다.
- 3세기 박해는 처음으로 제국 정책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시행되었다.
- 박해 이후의 용서 문제는 ‘교회란 무엇인가’를 묻는 신학 논쟁이 되었다.
- 불교는 중국에서 낯선 개념을 자기 말로 옮기는 오랜 작업을 이어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