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년
니케아 공의회
아리우스의 주장을 둘러싼 논쟁이 동방 교회 전체로 번졌다.
기독교가톨릭동방정교회니케아(이즈니크)공의회로마 제국
원인
-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 제국의 통합을 원한 황제의 개입
전개 과정
황제가 소집한 회의에 각지의 감독이 모여 신경을 채택하고 부활절 날짜 문제도 다루었다.
직접적 결과
- 니케아 신경이 채택되고 아리우스의 주장이 배척되었다
장기적 영향
-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이 이 신경을 공유한다
- 황제가 교리 회의를 소집하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 논쟁은 이 회의로 끝나지 않고 4세기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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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보편 공의회의 첫 사례로 본다.
동방정교회
일곱 보편 공의회의 첫째로 꼽는다.
개신교
대부분의 교단이 이 신경을 신앙의 기준으로 받아들인다.
역사학계
회의가 성경 목록을 정했다거나 예수의 신성을 ‘표결로 만들었다’는 통속적 서술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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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회의 참석자 수와 진행 과정의 세부는 사료마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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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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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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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자료
자료 유형과 출처를 함께 밝힙니다6
일어난 곳
니케아(이즈니크)325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니케아(이즈니크) — 니케아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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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니케아 신경 본문
- 에우세비우스
- 아타나시우스
- 4세기 교리사 연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