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4세기
박해받던 종교가 황제의 종교가 되고, 신앙 고백의 언어가 정해진다.
한 세기 만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잡혀가던 사람들이 궁정에 드나들었고, 황제가 공의회를 소집했다. 자유는 곧 새로운 문제를 낳았다. 이제 무엇을 믿는지 한 문장으로 정해야 했고, 그 문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제국 안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세계사 배경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개혁과 대박해를 지나 콘스탄티누스가 제국을 다시 통합했다.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새 수도가 되었고, 395년 제국은 동서로 나뉘어 다스려졌다. 인도에서는 굽타 왕조가 일어났다.
-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
-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었다.
-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
- 380년 테살로니카 칙령, 392년 이교 제사 금지로 기독교가 사실상 국교가 되었다.
- 395년 제국의 동서 분할 통치.
- 인도 굽타 왕조에서 힌두 전통이 융성하고 불교도 후원을 받았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제국이 기독교가 되면서 좁아진 자리
기독교가 제국의 종교가 되면서 유대인의 법적 지위는 점차 제한되었다. 회당은 유지되었지만 새 회당 건축이나 공직 진출이 어려워졌다. 학문의 중심은 팔레스타인에서 바빌로니아로 옮겨 갔다.
- 예루살렘 탈무드가 이 시기에 정리되기 시작했다.
- 바빌로니아 학원들이 유대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
기독교
공인, 국교화, 그리고 신경
밀라노 칙령으로 박해가 끝나고 국가와의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황제가 공의회를 소집해 교리 문제를 정리했고, 니케아 신경은 이후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이 공유하는 고백이 되었다. 동시에 제국의 후원은 교회를 권력 구조 안으로 끌어들였다.
- 니케아 공의회는 황제가 소집했다. 교회와 국가의 새로운 관계를 보여 준다.
- ‘정통’과 ‘이단’의 경계가 국가 권력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 수도원 운동은 제도화된 교회에 대한 대안적 흐름이기도 했다.
가톨릭
형성 중라틴어를 쓰는 서방교회 전통이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로 이어지지만, 이 시기를 ‘가톨릭’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의 이름을 앞당겨 붙이는 일이다.
가톨릭 역사 전체 보기 →동방정교회
형성 중그리스어를 쓰는 동방교회 전통이 콘스탄티노폴리스·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역시 후대의 이름으로 이 시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동방정교회 역사 전체 보기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제국의 종교가 된 기독교와 소수가 된 유대교 사이의 힘의 균형이 완전히 뒤집혔다. 이 구도가 이후 유럽사에서 오래 이어진다.
기독교 쪽 문헌에는 유대교를 대체된 종교로 보는 서술이 늘어난다.
유대교 쪽에서는 자기 전통의 보존과 학문 계승에 힘을 쏟았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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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3~311년기독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박해.
- 313년기독교
밀라노 칙령 —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의 자유를 허용한다.
- 325년기독교
니케아 공의회. 아리우스 논쟁을 다루고 신경을 채택한다.
- 381년기독교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서 신경이 보완된다.
- 380년기독교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니케아 신앙이 제국의 공식 신앙이 된다.
- 4세기기독교
이집트·시리아에서 수도원 운동이 퍼진다.
- 4세기 말기독교
히에로니무스가 라틴어 성경(불가타) 번역을 시작한다.
- 4세기유대교
유대인의 법적 지위가 점차 제한된다.
- 4세기불교
중국 북부에서 불교가 크게 성장하고, 도안·혜원 등이 교단을 세운다.
핵심 정리
- 313년 공인과 380년 국교화는 다른 사건이다. 둘을 섞지 않는다.
- 니케아 신경은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기독교 전통이 공유하는 고백이다.
- 국가의 후원은 교회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권력의 논리 안으로 끌어들였다.
- 기독교의 부상은 유대교에게 법적·사회적 지위의 축소를 뜻했다.
- 동·서방 교회의 언어와 관습 차이가 이 세기부터 뚜렷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