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80년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70인역)
이집트의 유대인 공동체는 일상에서 그리스어를 썼고 히브리어를 잘 읽지 못했다.
유대교기독교알렉산드리아번역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원인
-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언어 변화
- 왕실 도서관의 수집 정책이라는 전승
전개 과정
오경이 먼저 번역되고 이후 여러 세대에 걸쳐 나머지 책들이 옮겨졌다.
직접적 결과
- 그리스어를 쓰는 유대인이 자기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장기적 영향
- 초기 기독교가 읽고 인용한 성경이 대체로 이 번역본이었다
- 번역 과정에서 정해진 그리스어 용어가 신학 언어의 바탕이 되었다
- 훗날 유대교는 히브리어 본문을 기준으로 삼는 쪽으로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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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유대교
필요에서 나온 번역이었고, 후대에는 그 권위를 두고 평가가 엇갈렸다.
기독교
신약성서의 구약 인용 상당수가 이 번역본을 따른다.
역사학계
‘일흔두 명이 똑같이 번역했다’는 아리스테아스의 편지는 전설적 서술로 본다.
2
현대 역사학계의 평가와 논쟁
번역의 시기와 범위, 사용된 히브리어 원본의 형태가 계속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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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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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알렉산드리아기원전 280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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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산드리아 — 히브리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70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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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전승)
- 70인역 본문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