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년
슬라브 선교와 문자 창제
모라비아의 군주가 자기 말로 가르칠 선교사를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요청했다.
동방정교회가톨릭대모라비아선교·번역
원인
- 현지어 교육의 필요
- 프랑크 교회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판단
전개 과정
두 형제가 슬라브어를 적을 문자를 만들고 성경과 전례서를 옮겼다. 라틴어·그리스어·히브리어만 거룩한 언어라는 주장과 부딪혔다.
직접적 결과
- 슬라브어로 예배하고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장기적 영향
- 이 문자가 오늘날 키릴 문자의 바탕이 되었다
- 동유럽 문화와 문자 생활 전체의 출발점이 되었다
- 현지어 예배를 택한 동방과 라틴어를 고수한 서방의 차이가 뚜렷해졌다
1
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동방정교회
‘슬라브인의 사도’로 기린다.
가톨릭
교황이 슬라브어 전례를 승인한 일이 있었고, 오늘날 두 형제는 유럽의 공동 수호성인이다.
역사학계
글라골 문자와 키릴 문자의 관계, 창제 과정은 계속 연구되는 주제다.
3
관련 인물
4
관련 문헌
6
일어난 곳
대모라비아863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지도에 표시된 곳을 글로 보기
- 대모라비아 — 슬라브 선교와 문자 창제
7
출처와 추가 읽기
- 《키릴로스 전기》
- 슬라브 문헌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