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황령이 축소되고 근대 사상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권위를 분명히 하려 했다.
가톨릭바티칸공의회
전개 과정
신앙과 도덕에 관해 공식적으로 선언할 때의 교황 무류성을 정의했다.
직접적 결과
-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이 교의로 선포되었다
장기적 영향
- 일부 신학자와 신자가 이탈해 구가톨릭교회를 형성했다
- 정교회·개신교와의 거리가 더 벌어졌다
- 이탈리아군의 로마 점령으로 공의회가 중단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균형이 보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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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무류성의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이 자주 강조된다.
동방정교회
총대주교들의 협의 구조와 어긋난다고 보았다.
개신교
성경의 최종 권위와 충돌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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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바티칸1869년~1870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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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티칸 — 제1차 바티칸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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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 19세기 교회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