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8년~1417년
서방 교회의 대분열
교황청이 로마로 돌아온 직후의 선거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다.
가톨릭로마·아비뇽분열
전개 과정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교황이 서고, 뒤에는 피사에서 제3의 교황까지 나와 세 명이 병존했다.
직접적 결과
- 유럽 각국이 정치적 이해에 따라 서로 다른 교황을 지지했다
장기적 영향
- 공의회가 교황보다 위에 있다는 주장(공의회주의)이 힘을 얻었다
- 1417년 콘스탄츠 공의회로 수습되었으나 권위의 상처는 남았다
- 개혁 요구가 쌓여 다음 세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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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별 관점
같은 사건도 자리에 따라 다르게 기억됩니다가톨릭
제도의 위기가 개혁 논의를 낳았다는 점에서 양면적으로 평가된다.
개신교
16세기 개혁자들이 교황권의 한계를 말할 때 자주 인용한 사건이다.
역사학계
당대 사람들에게 ‘누가 진짜 교황인가’는 구원과 직결된 실질적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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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 곳
로마·아비뇽1378년~1417년경계 확실성: 대체로 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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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아비뇽 — 서방 교회의 대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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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추가 읽기
- 콘스탄츠 공의회 문서
- 중세 후기 교회사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