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안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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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뽑아 둔 초안
아래 자료로 만든 원고입니다. 그대로 쓰거나 다시 뽑아 비교해 보세요.제15장 15세기의 세계 종교
제국이 무너지고 인쇄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다음 세기의 화약이 쌓입니다
1401년 ~ 1500년
여는 장면 — 끝과 시작이 겹치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면서 천 년의 제국이 끝났습니다.
그 무렵 마인츠에서는 활자로 성경을 찍어 내고 있었습니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고, 같은 해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되었으며, 같은 해 콜럼버스가 출항했습니다.
끝과 시작이 겹친 세기입니다.
1. 무너지고 열리는 세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를 무너뜨리고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이베리아에서는 재정복이 완성되었고, 대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인쇄술이 유럽에 퍼졌고 르네상스가 무르익었습니다.
-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동로마 제국의 종말.
- 1455년경 구텐베르크 성경 인쇄.
- 1492년 그라나다 함락, 유대인 추방령, 콜럼버스의 항해.
- 1498년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2. 1415년 — 약속이 깨지다
대분열을 수습하려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가 개혁 문제도 함께 다뤘습니다.
프라하에서 체코어로 설교하며 교회의 부패를 비판하던 얀 후스가 안전 통행을 약속받고 공의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체포되어 이단으로 단죄되고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개신교 전통은 신념을 지킨 순교로 기억합니다. 당대 교회는 교회 일치를 위협하는 주장으로 판단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교회는 그 처리에 유감을 표했습니다(1999년).
신학 문제와 체코·독일 사이의 민족적 갈등이 얽혀 있었습니다.
이 처형은 개혁 요구를 잠재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후스 전쟁을 불러 유럽 정치까지 흔들었고, 체코에 개혁 전통이 남아 뒤에 모라비아 형제단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백 년 뒤 루터가 자신을 후스와 견주며 개혁의 정당성을 말하게 됩니다.
3. 1439년 — 위에서 맺은 합의
오스만의 압박을 받던 동로마가 서방의 군사 지원을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피렌체 공의회에서 긴 논쟁 끝에 동서 교회 재결합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필리오케·연옥·교황 수위권 등 오랜 쟁점을 다뤘습니다.
그러나 무산되었습니다.
가톨릭 쪽은 재결합의 정당한 절차였다고 보았습니다. 정교회 쪽은 정치적 압박 아래 이뤄진 합의여서 신자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봅니다. 동방 대표 일부는 끝내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맺은 합의가 아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무효가 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기대했던 서방의 군사 지원도 오지 않았습니다. '라틴의 모자보다 튀르크의 터번이 낫다'는 말이 당대의 정서를 보여 주는 문장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이 말은 동로마의 고위 관리 루카스 노타라스가 했다고 전하지만, 전하는 자료는 함락 뒤에 쓴 두카스의 역사서 한 곳뿐입니다. 실제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문장일수록 어디서 왔는지를 함께 적어 둡니다.
4. 1453년 — 천 년의 끝
동로마는 도시 하나만 남은 상태였고, 오스만은 대포를 앞세워 포위했습니다. 53일의 포위 끝에 성벽이 뚫렸고 마지막 황제가 전사했습니다.
천 년 동안 도시를 지킨 삼중 성벽이 대포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하기아 소피아가 모스크가 되었습니다.
정교회는 가장 큰 상실로 기억하며 오늘날에도 애도합니다. 이슬람 쪽은 오랜 목표의 성취로 기념했습니다.
술탄은 정교회 총대주교를 인정해 공동체를 존속시켰습니다. 정복 이후 정교회는 사라지지 않고 오스만 체제 안에서 법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밀레트 제도가 그것입니다.
학자들의 서방 이주가 르네상스에 기여했다는 설명이 오래 있었으나 그 비중은 재검토되고 있습니다.
정교회는 이제 국가 없이 공동체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모스크바가 정교 신앙의 계승자를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5. 1455년 — 활자
금속 활자와 유성 잉크, 압착기를 결합한 인쇄술이 완성되었습니다. 구텐베르크가 라틴어 성경을 180부 남짓 인쇄했습니다.
책을 대량으로 똑같이 찍어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그 속도와 범위를 결정했다는 데는 이견이 적습니다.
다음 세기 종교개혁이 몇 주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질 수 있는 조건이 여기서 만들어졌습니다. 모국어 성경과 소책자, 교리문답이 값싸게 보급되었고, 가톨릭 쪽에서도 인쇄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10세기 송의 대장경 인쇄와 비교해 볼 만합니다. 두 경우 모두 경전을 대량으로 찍었지만, 결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을 찍었는지, 누가 읽었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상태였는지가 달랐습니다.
6. 1492년 — 한 해 세 사건
이베리아 재정복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고, 종교적 단일화 정책이 강화되었습니다.
| 언제 | 무슨 일 | 누구에게 | 무엇이 이어졌나 |
|---|---|---|---|
| 1월 | 그라나다 함락 | 이베리아 무슬림 | 이슬람 통치의 종식, 이후 개종 강요와 추방 |
| 3월 | 유대인 추방령 | 스페인 유대인 | 세파르디 디아스포라의 형성 |
| 8월 | 콜럼버스 출항 | 아메리카 원주민 | 정복과 선교의 시작 |
세 사건은 같은 왕실의 같은 해 결정이었습니다. 하나만 떼어 보면 이 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에게는 넉 달 안에 개종하거나 왕국을 떠나라는 칙령이 내려졌습니다. 수만 명이 추방되었고, 세파르디 디아스포라가 오스만·북아프리카·네덜란드에 형성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이 이들을 받아들여 살로니카 등에 큰 공동체가 생겼습니다.
유대교는 티샤 베아브 무렵 떠나야 했던 추방으로 기억합니다. 이슬람 쪽에는 알안달루스의 종말이자 이후 강제 개종의 시작이었습니다. 가톨릭 쪽에서는 당시 신앙 통일 정책으로 정당화되었고, 오늘날 스페인은 세파르디 후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을 두기도 했습니다.
이 칙령이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 철회된 것은 1968년입니다. 사백칠십육 년이 걸렸습니다.
개종했으나 의심받는 이들(콘베르소)에 대한 종교재판도 이어졌습니다. 1478년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세기에 한쪽에서는 추방이, 다른 쪽에서는 수용이 일어났습니다. 한쪽만 보면 그림이 반쪽이 됩니다.
같은 세기 인도에서는 1469년 시크교의 창시자 나낙이 태어났습니다.
이 장이 남긴 네 문장
- 1453년과 1492년은 지중해 세계의 종교 지도를 바꾼 두 사건입니다.
- 인쇄술은 다음 세기 종교개혁이 빠르게 퍼질 수 있게 한 결정적 조건입니다.
- 추방과 수용이 같은 세기에 일어났습니다. 한쪽만 보면 그림이 반쪽이 됩니다.
- 동로마 이후 정교회는 국가 없이 공동체를 지키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 새로운 기술은 종교를 어떻게 바꿀까요? 인쇄술과 오늘날의 인터넷을 비교해 보세요.
- 국가를 잃은 종교 공동체는 무엇으로 자기를 지킬까요?
- 추방당한 사람들을 받아들인 쪽의 동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이 장에서 쓴 자료
문헌
- 구텐베르크 성경 (1455년경, 라틴어) — 오늘날 49부가량 남아 있음
- 알함브라 칙령 (1492년 3월, 스페인어)
자료 사진
- 구텐베르크 성경 (실제 유물 · 1455년경) ·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실제 유물 · 5세기 축조) · 알함브라 사자의 궁정 (실제 유물 · 14세기, 함락보다 이전의 것)
참고
- 오스만 정복 관련 사료
- 콘스탄츠·피렌체 공의회 문서
- 세파르디 디아스포라 연구
「종교사 한눈」이 모아 둔 자료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검수 이력
- 1차 · 사실 확인 — 「라틴의 모자보다 튀르크의 터번이 낫다」는 말의 출처가 함락 뒤에 쓴 두카스의 역사서 한 곳뿐이며 실제 발언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힘. 알함브라 칙령 철회(1968년)까지 걸린 햇수를 적음. 자료 사진의 제작 시기를 목록에 밝힘.
- 2차 · 관점 검토 — 표기를 「알람브라」에서 자료와 같은 「알함브라」로 통일. 1492년 세 사건을 한 왕실의 한 해 결정으로 묶어 읽는 기존 구성과, 추방과 수용을 함께 적는 서술은 유지.
- 3차 · 저작권 확인 — 자료 사진 3장의 이용 조건과 제작 시기 확인.
- 남은 것 · 외부 검토 — 쓴 쪽과 검수한 쪽이 같습니다. 출판 전 제3자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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