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101년~200년 · 정리한 내용으로 원고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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뽑아 둔 초안2세기 초안4,102자

제2장 2세기의 세계 종교

두 공동체가 서로를 남으로 보기 시작하고, 각자 경계를 긋습니다

101년 ~ 200년


여는 장면 — 들어갈 수 없는 도시

성전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봉기했고, 그 실패 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이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시는 로마식 이름으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 스스로를 유대교와 다른 무엇으로 설명하기 시작했고,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지를 두고 자기들끼리도 다투었습니다.

이 세기는 두 공동체가 각각 자기 경계를 긋는 세기입니다.


1. 제국의 전성기

로마 제국은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지는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인도에서는 쿠샨 왕조가 번성했고, 중국 후한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2세기 초 로마 제국이 최대 판도에 이르렀습니다.
  • 132~135년 바르 코크바 항쟁과 그 진압.
  • 쿠샨 왕조의 카니슈카 왕이 불교를 후원했다고 전합니다.
  • 그리스 철학과 종교 사상이 뒤섞인 여러 사조가 제국에 퍼졌습니다.

2. 132~135년 — 마지막 봉기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도 회복의 기대가 남아 있었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정책이 갈등을 촉발했습니다.

예루살렘을 로마식 도시로 재건하려는 계획이 있었고, 할례 금지로 해석된 조치가 있었습니다.

시몬 바르 코크바가 이끄는 세력이 한때 넓은 지역을 장악했으나 3년 만에 진압되었습니다. 봉기 세력이 로마 화폐 위에 다시 새겨 만든 동전이 남아 있습니다. 히브리 글자와 성전 정면이 새겨진 그 동전에 성전 회복의 기대가 담겨 있습니다.

확인된 사실

진압 후 예루살렘은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재건되고 유대인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종교 전통의 주장

랍비 전통 안에서도 이 항쟁과 메시아 선언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랍비 아키바가 바르 코크바를 지지했다고 전하는데, 그 평가는 랍비 문헌 안에서도 갈립니다.

학문적 해석

사료가 적어 규모와 경과의 세부는 추정에 의존합니다. 봉기의 직접적 계기가 도시 재건인지 할례 금지인지도 사료마다 다르게 전해집니다.

이 실패로 유대 지역의 정치적 회복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랍비들은 율법 해석과 교육을 통해 성전 없는 시대의 유대교를 세워 갔고, 그 결과가 다음 세기 초 미쉬나로 정리됩니다.

그리고 하나가 더 있습니다.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이들은 이 봉기에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메시아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이 두 공동체의 분리를 굳혔습니다.


3.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가

여러 갈래의 가르침이 함께 존재하는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배제할지 정해야 했습니다.

144년, 마르키온이 유대교 성경을 배제하고 축약된 목록만을 내세우자 로마 교회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확인된 사실

이 논쟁을 거치며 교회가 자기 문헌 목록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압력이 생겼습니다. 기독교가 유대교 성경을 계속 자기 경전으로 삼는다는 입장도 굳어졌습니다.

학문적 해석

마르키온이 정경을 '만들게 했다'는 설명은 단순화라는 지적이 있습니다. 목록 형성은 더 긴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세 가지 장치가 자리 잡았습니다. 정경 목록, 신앙의 규범, 그리고 감독의 계승입니다. 리옹의 감독 이레네우스가 《이단 반박》에서 이 틀을 정리했습니다.

학문적 해석

이레네우스의 저작은 사라진 여러 갈래의 가르침을 알려 주는 자료이기도 합니다. 다만 반대편의 서술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동시에 변증가들은 로마 사회를 향해 기독교가 위험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의 언어로 기독교를 설명했고, 모든 사람 안에 진리의 씨앗이 있다는 생각을 폈습니다. 그가 남긴 《트리폰과의 대화》는 두 종교가 갈라서는 시기의 논쟁을 보여 주지만, 유대교를 일방적으로 규정한 서술이라는 비판도 함께 받습니다.

박해는 여전히 국지적이었지만, 순교 기록이 공동체의 기억이 되었습니다.


4. 형상과 번역 — 동쪽에서

시리아의 두라 에우로포스에는 회당 하나가 통째로 남아 있습니다. 그 서쪽 벽 전체가 성경 장면을 그린 벽화로 덮여 있습니다.

반드시 짚을 것

이 회당은 이 장의 세기가 아니라 다음 세기의 것입니다. 벽화는 244/245년에 그려졌고, 256년 도시가 포위될 때 성벽을 보강하느라 흙에 묻히면서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2세기의 회당이 어땠는지를 직접 보여 주는 자료는 아니지만, 그 흐름이 어디로 갔는지를 가장 가까이서 보여 주는 자료여서 여기에 놓습니다.

형상을 쓰지 않는다는 통념과 달리, 3세기 중반의 한 회당은 성경 장면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의 유적이 통념 하나를 흔듭니다.

한편 간다라에서는 그리스식 옷주름이 표현된 불상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헬레니즘 조각 양식과 불교가 만난 자리입니다. 카니슈카 왕의 후원 아래 간다라 불교가 번성하고 대승 사상이 확산되었습니다.

학문적 해석

카니슈카의 즉위 연도조차 학계에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불교 전통은 그를 아쇼카에 견주는 후원자로 기립니다.

그리고 148년경, 안세고 같은 역경승들이 중국 낙양에서 불경을 한문으로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낯선 개념을 옮기느라 도가 용어를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학문적 해석

초기 한역은 원전과 대조하면 의역과 축약이 많습니다. 번역사 연구의 핵심 자료입니다.

동아시아 불교의 언어와 개념 틀이 이 번역들에서 출발합니다.


5. 각자 경계를 긋다

유대교기독교불교
이 세기의 큰일바르 코크바 항쟁과 그 실패정경·신앙 규범·감독 계승의 정리한문 번역의 시작
무엇을 정했나구전 율법의 정리무엇을 경전으로 받을 것인가낯선 개념을 어떤 말로 옮길 것인가
국가와의 관계정치적 회복의 길이 막힘국지적 박해가 이어짐왕실·귀족의 후원

세 전통이 모두 '무엇이 우리 것인가'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유대교는 구전 율법을, 기독교는 정경을, 불교는 번역어를 정했습니다.


이 장이 남긴 네 문장

  1. 바르 코크바 항쟁의 실패로 유대교는 정치적 회복이 아닌 학문과 교육의 길을 택했습니다.
  2. 기독교는 정경·신앙 규범·감독 계승이라는 장치로 내부 경계를 정리했습니다.
  3. 두 종교의 분리는 한 사건이 아니라 여러 세대에 걸친 과정이었습니다.
  4. 불교는 중국어라는 완전히 다른 언어권으로 건너가는 번역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

  • '무엇이 참된 가르침인가'를 정하는 일에는 어떤 힘이 작용할까요?
  • 번역은 왜 종교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될까요?
  • 두 공동체가 갈라서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서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 장에서 쓴 자료

문헌

  • 디다케 (1세기 말~2세기 초, 그리스어)
  • 이레네우스 《이단 반박》 (180년경, 그리스어)

자료 사진

  • 두라 에우로포스 회당 벽화 (실제 유물 · 244/245년, 다음 세기의 것) · 간다라 불상 (실제 유물 · 2~3세기) · 바르 코크바 항쟁기의 화폐 (실제 유물 · 132~135년)

참고

  • 카시우스 디오 등 로마 사가의 서술
  • 바르 코크바 문서(무라바앗·나할 헤베르)
  • 초기 한역 불전 연구

「종교사 한눈」이 모아 둔 자료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검수 이력

  • 1차 · 사실 확인 — 두라 에우로포스 회당 벽화를 「이 시기」의 자료처럼 읽히게 둔 것을 고침. 244/245년에 그려져 256년 성벽 보강 때 묻힌 다음 세기의 유적임을 본문에 밝히고, 그럼에도 여기에 놓는 까닭을 적음.
  • 2차 · 관점 검토 — 「형상을 쓰지 않는다는 통념」을 흔드는 근거의 시점을 3세기 중반으로 특정해, 2세기 회당을 직접 보여 주는 자료인 것처럼 읽히지 않게 함.
  • 3차 · 저작권 확인 — 자료 사진 3장의 이용 조건과 제작 시기 확인.
  • 남은 것 · 외부 검토 — 쓴 쪽과 검수한 쪽이 같습니다. 출판 전 제3자의 확인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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