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기원전 1세기
로마가 들어오고, 헤롯이 성전을 키우고, 세상은 1세기를 기다린다.
기원전 63년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에 들어왔다. 이제 유대 땅은 로마의 질서 안에 있었다. 헤롯 대왕은 성전을 웅장하게 다시 지었지만 백성의 마음은 얻지 못했다. 세금과 점령, 메시아를 기다리는 여러 목소리 — 1세기의 무대는 이미 이 세기에 다 차려졌다.
세계사 배경
로마 공화정이 내전을 거쳐 제정으로 바뀌었다. 지중해 전체가 한 정치 질서 아래 묶였고, 도로와 항로가 정비되었다.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불교가 계속 퍼졌고, 스리랑카에서는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 기원전 63년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 기원전 37~기원전 4년 헤롯 대왕이 유대를 다스렸다.
-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 제정을 열었다(로마의 평화).
- 제국의 도로망과 해상 교역로가 정비되었다.
- 기원전 1세기 스리랑카에서 팔리 경전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점령 아래서 커지는 기다림
로마의 지배와 헤롯의 통치 아래서 유대 사회는 크게 흔들렸다. 성전은 화려해졌지만 세금과 정치적 억압은 무거웠고, 하나님이 개입해 주시기를 바라는 종말론적 기대가 여러 형태로 퍼졌다. 메시아에 대한 기대도 하나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집단마다 달랐다.
- 헤롯 성전은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성소였다.
- 성전 세력, 율법 해석 학파, 광야 공동체, 무장 저항 세력이 공존했다.
- 메시아 기대는 왕적·제사장적·예언자적 형태로 다양했다.
-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제국 곳곳에 살고 있었다.
불교
경전이 글자가 되다
스리랑카에서 구전으로 이어지던 가르침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인도 서북부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대승 사상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동쪽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문자화는 가르침의 보존 방식을 바꾼 큰 전환이다.
- 대승 계열 경전의 형성은 기원 전후로 이어진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기독교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1세기 예수 운동이 놓이게 될 자리 — 로마의 점령, 성전 체제, 여러 갈래의 메시아 기대, 그리스어를 쓰는 디아스포라 — 가 이 세기에 모두 갖춰졌다.
로마와 인도를 잇는 해상·육상 교역로가 이 무렵 활발해졌다. 두 종교의 직접 접촉을 보여 주는 자료는 없지만, 사람과 물자가 오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는 점은 다음 세기들을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
이 시대의 자료
눌러서 크게 볼 수 있습니다한눈에 보는 연대표
- 기원전 63년유대교
로마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가 로마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 기원전 37년유대교
헤롯이 로마의 후원으로 유대 왕이 된다.
- 기원전 20년경~유대교
헤롯의 제2성전 대규모 증축이 시작된다.
- 기원전 1세기유대교
힐렐과 샴마이 학파의 율법 해석 전통이 형성된다.
-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제정을 연다.
- 기원전 1세기불교종교 전통의 주장
팔리 삼장이 스리랑카에서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핵심 정리
- 로마의 지배는 1세기 종교사의 정치적 무대를 만들었다.
- 헤롯 성전은 1세기 복음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건물이다.
- 메시아 기대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었다.
- 제국의 도로와 언어는 훗날 기독교 확산의 통로가 된다.
- 불교는 경전 문자화와 대승 사상의 태동으로 다음 단계를 준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