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기원전 5세기
율법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승가가 뿌리를 내린다.
성전은 다시 섰지만 공동체는 흔들렸다.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고 율법을 읽어 주며 ‘무엇이 우리를 우리답게 하는가’를 다시 정했다. 같은 세기에 인도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전하는 일이 승가의 과제가 되었고, 그리스에서는 사람이 신화 대신 이성으로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계사 배경
페르시아 제국이 근동을 지배했고,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을 겪은 뒤 아테네가 전성기를 맞았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소모되었다. 인도에서는 마가다가 강국으로 떠올랐다.
- 기원전 490·480년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를 막아냈다.
- 아테네 민주정과 비극·철학이 꽃피었다.
- 기원전 431~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 세계가 소모되었다.
-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경)가 활동했다.
- 인도 갠지스 유역에서 마가다가 세력을 넓혔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책의 종교로 굳어지다
제2성전기의 유다는 페르시아 제국의 작은 지방이었다. 이 시기에 토라를 공적으로 낭독하고 그것을 공동체 규범으로 삼는 형태가 굳어졌다.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거리도 이 무렵부터 벌어지기 시작한다.
-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과 에스라의 율법 낭독이 상징적 사건으로 전해진다.
- 제사장 계층이 공동체의 지도력을 쥐었다.
- 엘레판티네 파피루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실제 생활을 보여 주는 1차 사료다.
-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이 시기를 거치며 자리 잡는다.
불교
가르침을 기억하는 공동체
붓다의 입멸 후 승가는 가르침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았다. 문자가 아니라 함께 외우는 방식으로 경(가르침)과 율(규율)이 정리되었다고 전한다. 마가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후원을 받으며 승원이 자리 잡았다.
- 1차 결집은 불교 전통의 서술이며, 그 역사성은 학계에서 논의된다.
- 출가 공동체와 재가 신자의 관계가 제도로 자리 잡았다.
- 가르침은 여러 지방어로 암송되어 전해졌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전통은 여전히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세기에 양쪽 모두 ‘스승이 떠난 뒤 가르침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같은 과제를 만났다. 유대교는 글로 적힌 토라를 읽고 해석하는 길을, 불교는 함께 외워 확인하는 길을 택했다.
이 시대의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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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5세기 전반유대교
페르시아의 지방 행정 아래 유다 공동체가 재정비된다.
- 기원전 458년 또는 398년유대교학문적 해석
에스라의 활동. 연대는 학계에서 논쟁 중이다.
- 기원전 445년경유대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다.
- 기원전 5세기유대교학문적 해석
율법(토라) 낭독과 준수가 공동체의 중심이 된다.
- 기원전 5세기유대교
이집트 엘레판티네에 유대인 주둔군 공동체가 있었음이 파피루스로 확인된다.
- 붓다 입멸 직후(전통)불교종교 전통의 주장
라자그리하 1차 결집으로 가르침을 함께 외워 정리했다고 전한다.
핵심 정리
- 제2성전기 유대교는 성전 제사와 토라 준수라는 두 축으로 움직였다.
- 느헤미야의 성벽과 에스라의 율법 낭독은 공동체의 경계를 다시 그은 사건이다.
- 불교는 붓다 이후 ‘가르침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만들어 갔다.
- 이 세기 그리스의 이성적 사유는 훗날 기독교 신학이 사용할 언어를 준비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