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역사
기원전 6~5세기 인도 북부에서 시작되었다. 붓다의 생몰연도는 학계에서 여러 견해가 있다.
이 앱이 다루는 28개 시대 가운데 1개 시대에는 이 전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아래 목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대를 따라 읽기
원고가 있는 시대 27개고통의 뿌리를 묻는 길이 열리다
인도 북부 마가다 지역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브라만교의 제사와 카스트 질서 바깥에서, 스스로의 수행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출가자 공동체(승가)가 만들어지고 재가 신자가 이를 후원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 네 가지 진리(사성제)와 여덟 갈래 길(팔정도)이 가르침의 뼈대가 되었다.
- 생몰연도는 전통적 연대(기원전 563~483년경)와 수정 연대(기원전 480~400년경)가 맞선다.
- 같은 시기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도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활동했다.
- 초기 가르침은 문자가 아니라 암송으로 전해졌다.
가르침을 기억하는 공동체
붓다의 입멸 후 승가는 가르침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안았다. 문자가 아니라 함께 외우는 방식으로 경(가르침)과 율(규율)이 정리되었다고 전한다. 마가다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후원을 받으며 승원이 자리 잡았다.
- 1차 결집은 불교 전통의 서술이며, 그 역사성은 학계에서 논의된다.
- 출가 공동체와 재가 신자의 관계가 제도로 자리 잡았다.
- 가르침은 여러 지방어로 암송되어 전해졌다.
승가가 갈라지기 시작하다
계율의 세부 해석을 두고 승가 안에서 견해가 갈리며 상좌부와 대중부 계열의 분화가 시작되었다고 전한다. 마우리아 왕조의 등장은 다음 세기 불교 확산의 정치적 조건이 되었다.
- 2차 결집 기사는 전통의 서술이며, 분열 시점은 학계에서 논의된다.
- 부파불교로 이어지는 갈래가 이 무렵부터 나타난다.
왕이 전법을 후원하다
아쇼카는 정복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뒤 다르마에 따른 통치를 내세웠고, 그 내용을 바위와 돌기둥에 새겨 남겼다. 이 칙령들은 인도사에서 손꼽히는 1차 사료다. 그의 후원 아래 불교는 인도 밖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 아쇼카 칙령은 실물로 남아 있는 1차 사료다.
- 칙령은 특정 종파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 집단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 스리랑카 전래는 이후 상좌부 전통의 중심축이 된다.
그리스 왕과 승려가 마주 앉다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북부에서 불교는 그리스계 통치자·주민과 접촉했다. 《밀린다왕문경》은 그 만남을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이 지역의 문화 접촉은 훗날 불상 조각 양식에도 영향을 준다.
- 간다라 지역이 불교와 헬레니즘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 부파불교의 여러 학파가 각자의 논서를 발전시켰다.
경전이 글자가 되다
스리랑카에서 구전으로 이어지던 가르침이 문자로 기록되었다고 전한다. 인도 서북부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대승 사상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고, 실크로드를 따라 불교가 동쪽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문자화는 가르침의 보존 방식을 바꾼 큰 전환이다.
- 대승 계열 경전의 형성은 기원 전후로 이어진다.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쿠샨 왕조의 후원 아래 간다라·중앙아시아에서 불교가 번성했고, 상인과 승려를 따라 중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불상을 만드는 관습이 이 무렵 자리 잡았고, 대승 경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 중국 전래 시점은 전승(67년 백마사)과 학계 추정이 다르다.
- 간다라·마투라에서 불상 조각 양식이 발전했다.
- 대승 계열 경전이 편찬되기 시작했다.
한문으로 옮겨지기 시작한 경전
중앙아시아 출신 승려들이 중국에 와서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번역은 낯선 개념을 중국의 말로 바꾸는 일이었고, 이 과정에서 도가 용어를 빌려 쓰기도 했다.
- 안세고·지루가참 등이 초기 한역 작업을 이끌었다.
- 간다라 불상 양식이 정착했다.
중국 땅에 뿌리내리기
분열기 중국에서 불교는 외래 종교로서 자리를 찾아갔다. 도가 사상의 용어를 빌려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격의)이 쓰였고, 왕실과 귀족의 후원이 늘었다.
현장의 여행과 티베트 전래
현장은 17년에 걸쳐 인도를 다녀와 방대한 경전을 번역했고, 그 여행 기록은 인도사 연구의 중요한 사료가 되었다. 티베트에는 이 세기에 불교가 전해져 이후 독자적 전통으로 발전한다.
- 《대당서역기》는 7세기 중앙아시아·인도를 알려 주는 1차 사료다.
- 티베트 불교의 시작이 이 세기다.
- 당의 국제적 개방성 속에서 여러 종교가 장안에 공존했다.
티베트의 후전기
아티샤의 티베트 방문으로 불교가 다시 정비되었고, 여러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도 본토에서는 정치 상황이 나빠지며 불교 교단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인도에서 사라지다
정치적 혼란과 대사원 파괴로 인도 본토의 불교 교단이 사실상 끊겼다. 다만 티베트·동남아시아·동아시아에서는 계속 발전했다. 인도 불교의 쇠퇴를 한 사건으로만 설명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티베트에서 계율과 학문을 강조하는 개혁 흐름이 일어나 겔룩파로 이어진다.
티베트에서 겔룩파가 자리 잡고, 동남아시아에서는 상좌부 불교가 국가 종교로 확립되었다.
달라이 라마 제도의 시작
몽골과 티베트의 관계 속에서 달라이 라마 칭호가 생겼고, 겔룩파가 티베트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의 무장 세력이 대사찰의 힘을 꺾었다.
티베트에서 5대 달라이 라마가 정치·종교 권력을 함께 쥐었고, 일본에서는 막부 아래 사찰이 호적 관리 기능을 맡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왕실의 후원 아래 승가 개혁이 진행되었고, 일본에서는 사찰이 제도 안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근대 불교의 형성
기독교 선교에 대한 대응과 서구 학문과의 만남 속에서 불교는 스스로를 ‘합리적인 종교’로 다시 설명했다. 스리랑카·일본·태국에서 각각 다른 형태의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세계로 흩어진 불교
티베트 불교가 망명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고, 선(禪)과 명상이 서구에 확산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공산 정권과 근대화 속에서 큰 변동을 겪었다. 참여불교라는 사회 참여 흐름도 나타났다.
명상과 마음챙김이 종교 밖으로도 퍼졌다. 동시에 일부 지역에서 불교가 민족주의와 결합해 갈등에 연루되는 문제도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