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기원전 6세기
성전이 무너진 세기, 그리고 붓다가 나타난 세기.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이 불탔다. 신을 예배하던 건물이 사라진 자리에서 유대인들은 성전 없이도 신앙을 이어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거의 같은 무렵 인도 북부에서는 한 사람이 왕궁을 떠나 고통의 뿌리를 묻고 있었다. 서쪽 끝에서는 성전이 무너지고, 동쪽에서는 새로운 길이 열린 세기다.
세계사 배경
신바빌로니아가 근동을 지배하다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제국에 무너졌다. 그리스에서는 폴리스가 성장했고, 중국은 춘추시대 후기로 공자가 활동했으며, 인도에서는 갠지스 유역에 여러 나라가 다투고 있었다.
- 기원전 605년 이후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근동을 장악했다.
-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점령했다.
- 페르시아는 피지배 민족의 종교에 비교적 관용적인 통치를 폈다.
- 중국에서는 공자(기원전 551~479년경)가 가르쳤다.
- 인도 갠지스 유역에서 여러 사상가들이 브라만교의 제사 중심 종교를 비판했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성전을 잃고 책과 공동체를 얻다
성전 파괴와 바빌론 포로기는 유대교 역사에서 가장 큰 전환점 가운데 하나다. 제사를 드릴 성전이 없는 상태에서 안식일 준수, 할례, 율법 낭독, 공동체 모임이 신앙의 중심 표지가 되었다.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 일부가 귀환해 제2성전을 세웠지만, 많은 유대인은 바빌론과 이집트에 남았다. 디아스포라가 이때부터 유대교의 상수가 된다.
- 기원전 586년 제1성전 파괴, 기원전 516년경 제2성전 봉헌.
- 포로기에 성전 없는 신앙 형태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설명이다.
- 에스겔·제2이사야 계열 문헌이 이 시기의 신학을 담고 있다.
- 유대인 공동체가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사는 형태가 굳어졌다.
불교
형성 중고통의 뿌리를 묻는 길이 열리다
인도 북부 마가다 지역에서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다. 브라만교의 제사와 카스트 질서 바깥에서, 스스로의 수행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했다. 출가자 공동체(승가)가 만들어지고 재가 신자가 이를 후원하는 구조가 생겨났다.
- 네 가지 진리(사성제)와 여덟 갈래 길(팔정도)이 가르침의 뼈대가 되었다.
- 생몰연도는 전통적 연대(기원전 563~483년경)와 수정 연대(기원전 480~400년경)가 맞선다.
- 같은 시기 자이나교의 마하비라도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활동했다.
- 초기 가르침은 문자가 아니라 암송으로 전해졌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전통은 이 시기에 서로 만나지 않았다. 다만 기원전 6세기는 근동과 인도 양쪽에서 기존 종교 질서를 다시 묻는 움직임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에서 함께 놓고 볼 만하다.
이 시대의 자료
눌러서 크게 볼 수 있습니다한눈에 보는 연대표
- 기원전 597년·587/586년유대교
신바빌로니아가 예루살렘을 두 차례 함락하고 성전을 파괴한다. 바빌론 포로기가 시작된다.
- 기원전 6세기 중반유대교학문적 해석
포로기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안식일·할례·율법 낭독이 신앙의 중심 표지로 자리 잡는다.
- 기원전 539년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정복한다.
- 기원전 538년유대교
키루스 칙령으로 유대인의 귀환과 성전 재건이 허용된다.
- 기원전 516년경유대교
제2성전이 봉헌된다.
- 기원전 6~5세기불교학문적 해석
고타마 싯다르타가 활동한다. 생몰연도는 학계에서 두 계열의 연대가 맞선다.
- 기원전 6세기
자이나교의 마하비라가 활동하고, 페르시아에서는 조로아스터교 전통이 자리 잡는다.
핵심 정리
-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바빌론 포로기는 유대교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 성전 없이도 신앙을 유지하는 방식(안식일·율법·공동체)이 이때 자리 잡았다.
-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의 관용 정책으로 귀환과 제2성전 재건이 가능해졌다.
- 같은 세기에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되었고, 두 전통은 서로 알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갔다.
- 붓다의 생몰연도는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학계의 논쟁거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