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세기는 숫자가 클수록 옛날입니다. 기원전 6세기 → 기원전 5세기 순으로 시간이 흐릅니다.
기원전 2세기
신앙을 지키려는 항쟁이 일어나고, 유대교 안에 여러 갈래가 생긴다.
왕이 성전에 다른 신의 제단을 세우자 시골 제사장 가문이 무기를 들었다. 마카비 항쟁은 종교의 자유를 위한 싸움으로 기억되지만, 그 뒤에 세워진 하스몬 왕조는 다시 권력의 논리로 움직였다. 같은 세기 유대교 안에는 바리새·사두개·에세네 같은 갈래가 뚜렷해졌다.
세계사 배경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지배했고, 로마는 지중해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인도에서는 마우리아 왕조가 무너진 뒤 여러 왕조가 섰고, 중앙아시아에서는 인도-그리스 왕국이 있었다. 중국 한나라가 서역으로 길을 열었다.
- 기원전 2세기 초 셀레우코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차지했다.
- 기원전 146년 로마가 카르타고와 코린토스를 무너뜨렸다.
- 인도-그리스 왕 메난드로스 1세가 불교와 접촉했다고 전한다.
- 한 무제 때 장건의 서역 사행으로 동서 교역로가 열렸다.
각 종교는 이 시대에 무엇을 겪었나
같은 구조로 나란히 비교합니다유대교
박해가 만든 항쟁, 항쟁이 만든 왕조
셀레우코스의 종교 탄압에 맞선 마카비 항쟁은 유대교사에서 신앙의 자유를 지킨 사건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결과로 세워진 하스몬 왕조는 제사장직과 왕권을 함께 쥐면서 내부 비판을 받았고, 그 갈등 속에서 여러 종파가 자기 자리를 분명히 했다.
- 하누카는 성전 정화를 기념하는 절기다.
- 바리새는 구전 전승과 율법 해석을, 사두개는 성전 제사와 성문 율법을 중시했다.
- 에세네 계열은 성전 체제를 비판하며 광야 공동체를 이뤘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 다니엘서의 최종 형태가 이 시기 상황과 연결된다는 것이 다수 학설이다.
불교
그리스 왕과 승려가 마주 앉다
중앙아시아와 인도 서북부에서 불교는 그리스계 통치자·주민과 접촉했다. 《밀린다왕문경》은 그 만남을 문답 형식으로 전한다. 이 지역의 문화 접촉은 훗날 불상 조각 양식에도 영향을 준다.
- 간다라 지역이 불교와 헬레니즘 문화가 만나는 접점이 되었다.
- 부파불교의 여러 학파가 각자의 논서를 발전시켰다.
종교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두 종교는 여전히 직접 만나지 않았다. 다만 이 세기에 지중해–중앙아시아–인도를 잇는 교역로가 활발해지면서, 종교가 상인과 함께 이동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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쿰란에서 나온 성경 사본. 제2성전기에 성경 본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여 준다.

《밀린다왕문경》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인도-그리스 왕.
한눈에 보는 연대표
- 기원전 167년유대교
안티오코스 4세가 유대교 관습을 금하고 성전을 훼손한다.
- 기원전 167~164년유대교
마카비 항쟁이 일어나 성전을 되찾는다. 하누카 절기의 기원이 된다.
- 기원전 141년경유대교
하스몬 왕조가 사실상 독립 왕조로 자리 잡는다.
- 기원전 2세기유대교
바리새·사두개·에세네 등 유대교 내부의 갈래가 뚜렷해진다.
- 기원전 2세기유대교
쿰란 공동체가 형성되고 훗날 사해문서로 발견될 문헌들이 쓰이기 시작한다.
- 기원전 2세기불교종교 전통의 주장
《밀린다왕문경》의 배경이 되는 인도-그리스 왕과 불교 승려의 대화 전승.
핵심 정리
- 마카비 항쟁은 종교 탄압에 맞선 저항이자 정치적 독립 운동이었다.
- 종교 항쟁의 결과가 반드시 종교적인 통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이 시기에 형성된 유대교 내부의 갈래들이 1세기의 배경이 된다.
- 불교는 중앙아시아에서 헬레니즘 문화와 만나며 새로운 표현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