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아라비아반도에서 시작

이슬람교의 역사

무함마드의 활동과 함께 7세기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었다. 622년 히즈라를 이슬람력 원년으로 삼는다.

이 앱이 다루는 28개 시대 가운데 13개 시대에는 이 전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아래 목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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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따라 읽기

원고가 있는 시대 15개
7세기601년~700년

한 세대 만에 제국이 되다

무함마드의 활동으로 시작된 신앙 공동체는 그의 사후 급속히 확장했다. 유일신 신앙, 예언자 전통, 성서의 백성에 대한 인식 등에서 유대교·기독교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고, 그래서 두 종교와의 관계는 처음부터 가까움과 논쟁을 함께 안고 있었다. 지도자 계승 문제는 수니·시아 전통이 갈라지는 뿌리가 되었다.

  • 622년 히즈라가 이슬람력의 기점이다.
  • 쿠란은 무함마드에게 주어진 계시를 모은 것으로 신앙된다.
  • 656~661년 내전과 680년 카르발라 사건이 수니·시아 분기의 배경이다.
  • 정복은 대체로 개종 강요가 아니라 세금과 지배 체제의 변화로 진행되었다. 개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서서히 일어났다.
8세기701년~800년

정복에서 학문으로

아바스 왕조는 바그다드를 세우고 그리스·페르시아·인도의 학문을 아랍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 운동은 이후 유럽이 고대 학문을 되찾는 통로가 된다. 이베리아에서는 이슬람 문화권이 자리 잡았다.

  • 번역 운동으로 의학·수학·천문학·철학이 발전했다.
  • 이슬람 법학(피크흐)의 주요 학파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 하디스 수집과 검증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9세기801년~900년

학문의 절정, 정치의 분열

칼리프의 실질 권력이 약해지는 동안 학문은 절정에 이르렀다. 의학·수학·천문학의 성과가 뒤에 유럽으로 전해진다.

10세기901년~1000년

세 개의 중심

바그다드의 아바스, 카이로의 파티마, 코르도바의 후우마이야가 각각 칼리프를 칭하며 경쟁했다. 정치적 분열은 오히려 여러 도시에서 문화가 꽃피는 조건이 되기도 했다.

11세기1001년~1100년

셀주크의 시대, 가잘리의 종합

셀주크 튀르크가 중동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었고, 마드라사 제도가 확산되며 학문이 제도화되었다. 가잘리는 법학·신학·철학·수피 영성을 잇는 저작으로 이후 수니 이슬람 사상의 방향을 정했다.

  • 십자군의 도착은 지역 세력 다툼 속의 한 사건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 마드라사가 학문 교육의 표준 기관이 되었다.
12세기1101년~1200년

살라딘과 철학자들

살라딘의 예루살렘 회복은 관용적 처리로 기억된다. 사상 면에서는 이븐 루시드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이 유럽 스콜라 신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 1187년 예루살렘 접수는 1099년과 달리 학살 없이 이뤄졌다.
  • 이븐 루시드는 유럽에서 ‘아베로에스’로 알려졌다.
13세기1201년~1300년

칼리프조의 종말과 새로운 중심

몽골의 바그다드 함락으로 아바스 칼리프조가 끝났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는 무너지지 않았고, 이집트 맘루크 왕조와 이후 몽골계 지배자들의 개종을 통해 새 중심이 만들어졌다.

  • 정복자가 오히려 피정복 종교로 개종한 대표적 사례다.
  • 델리 술탄국을 통해 이슬람이 인도 아대륙에 자리 잡았다.
14세기1301년~1400년

오스만의 부상

오스만이 발칸으로 진출하며 동유럽 종교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학문에서는 이븐 할둔이 문명의 흥망을 설명하는 독창적 역사 이론을 내놓았다.

15세기1401년~1500년

오스만의 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차지한 오스만은 지중해 동부의 지배자가 되었고, 밀레트 제도로 여러 종교 공동체를 관리했다. 이베리아에서는 반대로 무슬림이 추방·개종을 강요당했다.

16세기1501년~1600년

세 제국의 시대

오스만·사파비·무굴 세 제국이 이슬람 세계를 나눠 다스렸다. 사파비가 시아 이슬람을 국교로 삼으면서 오스만과의 대립이 종파 대립과 겹쳤다. 무굴의 아크바르는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정책을 폈다.

  • 1517년 이후 오스만 술탄이 성지 관리자의 지위를 갖게 되었다.
  • 사파비의 시아 국교화가 오늘날 이란의 종교 지형을 만들었다.
  • 아크바르는 종교 간 토론을 궁정에서 열었다.
17세기1601년~1700년

확장의 끝

1683년 빈 포위 실패 이후 오스만은 유럽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무굴에서는 아우랑제브의 정책이 종교 간 관계를 경직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18세기1701년~1800년

정화 운동의 시작

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와하비 운동은 후대의 관행을 걷어내고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이 흐름은 오늘날까지 이슬람 세계의 논쟁 지점 가운데 하나다.

19세기1801년~1900년

개혁과 응답

식민 지배와 근대 문물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두고 개혁 사상이 일어났다. 이슬람의 원리와 근대 과학·제도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핵심 물음이었다.

20세기1901년~2000년

탈식민 이후의 길 찾기

독립한 무슬림 국가들이 어떤 체제를 세울 것인가를 두고 세속 민족주의와 이슬람적 국가 구상이 경쟁했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종교가 근대 국가의 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건으로 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석유 경제와 이주로 무슬림 인구가 유럽·북미에 정착했다.
  • 정치적 이슬람 운동과 그에 대한 내부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 이슬람을 하나의 정치 성향으로 일반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2001년~2100년

세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며 가장 빠르게 늘고 있다. 소수 극단 세력의 폭력과 그에 대한 무슬림 사회 내부의 비판이 함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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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이 관련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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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의 인물

유대교초기 기독교가톨릭동방정교회개신교불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