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정교회의 역사
그리스어를 쓰는 동방교회 전통. 1054년은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이지 시작점이 아니다.
이 앱이 다루는 28개 시대 가운데 10개 시대에는 이 전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아래 목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대를 따라 읽기
원고가 있는 시대 18개그리스어를 쓰는 동방교회 전통이 콘스탄티노폴리스·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역시 후대의 이름으로 이 시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동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축으로 한 동방 교회 체제가 자리 잡았다.
황제와 총대주교가 함께 다스리는 동방 교회 체제가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동로마 제국은 시리아·이집트를 잃고 소아시아와 발칸 중심의 제국으로 축소되었다. 교회도 그 판도 안에서 재편되었다.
도움을 청했다가 더 큰 문제를 얻다
만지케르트 패배 후 동로마 황제는 서방에 용병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착한 것은 용병이 아니라 독자적인 목표를 가진 대규모 군대였고, 이 어긋남이 이후 두 교회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다.
동로마는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서방과의 불신은 깊어졌고, 다음 세기 큰 타격을 입는다.
약탈당한 도시
1204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반세기 넘게 라틴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이 경험은 동방 교회가 서방과의 재결합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동로마는 영토를 거의 잃고 오스만의 압박을 받았다. 서방과의 재결합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제국 없는 교회
동로마가 사라진 뒤 정교회는 오스만의 밀레트 제도 아래에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모스크바가 스스로를 정교 신앙의 계승자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오스만 지배 아래 밀레트 체제로 공동체를 유지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1589년에 세워졌다.
러시아에서 교회가 국가 기구에 더 깊이 편입되었다.
발칸의 민족국가 성립과 함께 각 민족별 교회가 자립했다. 러시아에서는 수도원 영성이 되살아났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 아래에서 큰 탄압을 받았고, 1990년대 이후 다시 살아났다. 1965년 로마와의 상호 파문 철회는 관계 회복의 상징이다.
2016년 대공의회가 열렸으나 일부 교회가 불참했고, 우크라이나 문제로 교회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