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사 한눈
콘스탄티노폴리스·동지중해에서 시작

동방정교회의 역사

그리스어를 쓰는 동방교회 전통. 1054년은 분열을 상징하는 사건이지 시작점이 아니다.

이 앱이 다루는 28개 시대 가운데 10개 시대에는 이 전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아래 목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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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따라 읽기

원고가 있는 시대 18개
4세기301년~400년형성 중

그리스어를 쓰는 동방교회 전통이 콘스탄티노폴리스·안티오키아·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역시 후대의 이름으로 이 시기를 규정하지 않는다.

5세기401년~500년형성 중

동로마 황제와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를 축으로 한 동방 교회 체제가 자리 잡았다.

6세기501년~600년형성 중

황제와 총대주교가 함께 다스리는 동방 교회 체제가 완성 단계에 들어섰다.

7세기601년~700년형성 중

동로마 제국은 시리아·이집트를 잃고 소아시아와 발칸 중심의 제국으로 축소되었다. 교회도 그 판도 안에서 재편되었다.

8세기701년~800년

성상 논쟁의 무대

황제의 정책과 수도원의 저항이 부딪히며 동방 교회의 신학과 전례가 다듬어졌다.

9세기801년~900년

슬라브 세계로

성상 논쟁이 끝나고 전례가 정비되었으며, 슬라브 선교를 통해 동방 교회의 영향권이 크게 넓어졌다.

10세기901년~1000년

루스의 세례

988년 키예프의 개종으로 동방 기독교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으로 뻗어 나갔다. 이 결정이 동유럽 문화의 방향을 정했다.

11세기1001년~1100년

도움을 청했다가 더 큰 문제를 얻다

만지케르트 패배 후 동로마 황제는 서방에 용병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착한 것은 용병이 아니라 독자적인 목표를 가진 대규모 군대였고, 이 어긋남이 이후 두 교회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킨다.

12세기1101년~1200년

동로마는 일시적으로 회복했지만 서방과의 불신은 깊어졌고, 다음 세기 큰 타격을 입는다.

13세기1201년~1300년

약탈당한 도시

1204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반세기 넘게 라틴 세력의 지배를 받았다. 이 경험은 동방 교회가 서방과의 재결합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14세기1301년~1400년

동로마는 영토를 거의 잃고 오스만의 압박을 받았다. 서방과의 재결합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다.

15세기1401년~1500년

제국 없는 교회

동로마가 사라진 뒤 정교회는 오스만의 밀레트 제도 아래에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모스크바가 스스로를 정교 신앙의 계승자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16세기1501년~1600년

오스만 지배 아래 밀레트 체제로 공동체를 유지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좌가 1589년에 세워졌다.

17세기1601년~1700년

러시아 교회의 분열

전례서 개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구교도가 갈라져 나갔다. 국가 권력이 개입한 종교 개혁의 사례다.

18세기1701년~1800년

러시아에서 교회가 국가 기구에 더 깊이 편입되었다.

19세기1801년~1900년

발칸의 민족국가 성립과 함께 각 민족별 교회가 자립했다. 러시아에서는 수도원 영성이 되살아났다.

20세기1901년~2000년

소련과 동유럽 공산 정권 아래에서 큰 탄압을 받았고, 1990년대 이후 다시 살아났다. 1965년 로마와의 상호 파문 철회는 관계 회복의 상징이다.

21세기2001년~2100년

2016년 대공의회가 열렸으나 일부 교회가 불참했고, 우크라이나 문제로 교회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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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이 관련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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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통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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