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역사
라틴어를 쓰는 서방교회 전통이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특정 연도를 창립일로 삼기 어렵다.
이 앱이 다루는 28개 시대 가운데 10개 시대에는 이 전통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는 아래 목록에 나오지 않습니다.
시대를 따라 읽기
원고가 있는 시대 18개라틴어를 쓰는 서방교회 전통이 로마 주교를 중심으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지금의 가톨릭교회로 이어지지만, 이 시기를 ‘가톨릭’이라 부르는 것은 후대의 이름을 앞당겨 붙이는 일이다.
서방에서 로마 주교의 위상이 높아졌고, 무너진 제국 행정 대신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유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서방 라틴 교회가 수도원과 로마 주교를 축으로 자리를 잡아 갔다.
서방 라틴 교회가 잉글랜드·프랑크 지역 선교로 기반을 넓혔다. 로마 주교의 지도력이 서방에서 점점 커졌다.
카롤루스 제국의 분열 속에서 교황권과 세속 권력의 관계가 복잡해졌다.
교황권의 세기
개혁 운동을 거쳐 교황이 서유럽 전체를 향해 발언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 클레르몽의 호소가 실제로 수만 명을 움직인 것이 그 힘을 보여 준다.
- 교황이 황제를 파문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카노사 사건.
- 십자군 참가자에게 주어진 영적 보상이 대규모 동원을 가능하게 했다.
시토회 개혁, 대학 성립, 십자군의 계속 — 교황권이 유럽 전체를 조율하는 시대였다.
교황권이 절정에 이르렀고 신학·법·조직이 정교해졌다. 그 힘은 통제로도 쓰였다.
아비뇽 시기와 대분열로 교황권의 도덕적 권위가 크게 손상되었다. 개혁 요구가 쌓였다.
대분열은 수습되었지만 개혁 요구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베리아에서는 종교재판이 강화되었다.
트리엔트의 개혁
트리엔트 공의회는 개신교의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에 성직자 교육·규율·전례를 정비했다. 예수회는 교육과 해외 선교의 중심이 되었다. 이 개혁은 개신교에 대한 대응이자 오래된 내부 요구의 결실이었다.
- 성경과 전통을 함께 권위로 인정했다.
- 신학교 제도를 도입해 성직자 교육을 체계화했다.
- 예수회를 통해 아시아·아메리카 선교가 확대되었다.
해외 선교가 확대되는 한편, 유럽 내에서는 국가권력과의 관계를 조정해야 했다.
혁명과 계몽 사상의 도전에 직면했다. 프랑스 혁명기에 교회 재산이 몰수되고 성직자가 박해받았다.
근대 사상에 맞서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1891년 노동 문제에 관한 회칙으로 사회 교리의 출발점을 놓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모국어 전례,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관계, 타 종교에 대한 태도, 종교 자유에 관한 문서를 채택하며 가톨릭교회가 근현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꿨다.
2013년 이후 사회·환경 문제와 종교 간 대화에 힘을 실었다. 남반구 신자가 다수인 교회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